읽고본느낌

나의 아름다운 이웃

샌. 2019. 7. 29. 11:27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고 싶어 찾은 책이다. 선생이 문단에 나온 초기에 쓴 짧은 소설 모음집으로, 시기로는 1970년대에 해당한다. 일상을 섬세하고 따스하게 그려내는 선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선생은 40대의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그래선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젊은 작가와는 다르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정겨운 얘기를 듣 것 같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속 작품을 읽으면 70년대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경제 성장과 부동산으로 부자가 생기기 시작하고, 아파트 문화가 시작될 때였다. 당시 사람들의 삶과 의식이 어떠했는지 잘 그려져 있다. 선생의 실제 경험이 작품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때 나는 20대였으니 마치 앨범의 옛 사진을 보는 듯, 이런 시절이었구나 하고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이런 콩트가 어쩌면 작가의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내준다. 서문에서 선생은 콩트 쓰는 맛을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했다. 바늘구멍으로 본 세상이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작품을 빛나게 한다. 단지, 상실의 시대를 예견하는 사회 비판적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이 책 제목으로 쓰인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글을 옮긴다. 책을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소리 내 읽는 게 좋고, 소리 내 읽는 것보다는 문장을 따라 써 보는 게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닥토닥 자판을 치다 보면 선생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내가 결혼해서 들어간 시댁은 스물다섯 평짜리 한옥이었다. 나는 주변머리없게도 그 집에서 자그마치 이십칠 년 동안을 눌러 살았다.

  나도 그동안 쭉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만 그 동네엔 유난히 노인들이 많이 사셨다. 집집마다 노인네가 안 계신 집이 없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까지 세 분의 노인을 모시고 사는 집도 있었다. 그분들이 다 우리 시어머니의 친구 되시는 분들이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새며느리 적부터 나를 '아가'라고 부르시던 걸 내 딸이 시집가서 첫애를 낳을 때까지도 여전히 '아가'였다. 동네 노인들은 나를 '새댁'이라고 불렀다. 이십칠 년 동안, 그사이 외손자까지 생겨 할머니라고 부르건 말건 나는 '아가'요, '새댁'이었다.

  내가 '만년 아가', '만년 새댁'인 게 얼마나 희귀한 축복이었던가를 안 건 지금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였다.

  실상 나는 벌써부터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구닥다리 한옥의 구식 부엌과 마당에 있는 수돗가 빨래터는 넌더리가 났다. 나도 문화생활이란 걸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아파트라면 질색이셨다. 그분의 반대엔 이유가 없었다. "나 죽거든 가렴!" 이 한마디로 담벼락처럼 버티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십칠 년 동안 고된 시집살이를 시킨 것은 시어머님뿐 아니라 그 한옥의 불편도 함께였다.

  시어머님이 노환으로 별세하시고 탈상을 하자, 곧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설득해서 아파트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 한옥을 싼값으로 팔고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를 사놓고 도배도 하고 수리도 할 겸 드나들 때였다. 동경하던 아파트였지만 막상 이사를 하려고 살펴보니 쉬 정이 들까 싶지가 않았다. 이웃의 대부분이 이십 내나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주부들이었는데 모두 거만하고 쌀쌀해 보였다. 집수리하러 드나드는 이웃을 보고도 알은체도 안 하고 싹싹 지나다녔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이사하는 일이 드물어서 그런지, 누구네 집이 팔렸다 하면 섭섭해서 한동안 이웃끼리의 화제가 됐고, 새로 올 사람에 대해서도 억측이 구구했다. 새로 이사 온 지 사흘만 되면 그 집 주인의 직업은 물론, 부엌의 숟가락 수, 한 달에 연탄을 몇 개 때는 것까지가 신기한 소문이 되어 동네에 파다했다. 나는 한옥의 불편함과 함께 이웃간의 그런 비밀없음을 얼마나 싫어하고 경멸했던가. 그러나 낯선 동네의 낯선 사람들의 무관심에 담박 주눅이 든 나는 이사도 오기 전에 벌써 구식 동네의 그런 촌스러운 풍습과의 결별이 아쉽게 여겨졌다. 내가 이 새로운 아파느 동네에 정이 들 것 같지 않은 까닭은 이웃의 무관심 말고 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젊은 엄마와 예쁜 아기가 같이 탔기에 나는 우선 아기에게 아부하기 위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예쁘기도 해라. 아가, 몇 살이지? 호호호...."

  아이는 힐끔 쳐다만 보고 대답을 안 했다. 젊은 엄마가 슬그머니 아기를 나무랐다.

  "세 살, 세 살이라고 말씀드려야지. 할머니가 물어보시는데."

  새댁에서 별안간 '할머니'로 격상된 충격은 매우 고약했다. 가슴이 울렁이고 다리 팔에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이 사는 동네에 담박 정이 떨어졌다. '새댁'에서 아직 '아주머니'도 안 거쳤는데 '할머니'라니 말도 안 돼. 젊은 것들이란 뭘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말버릇도 엉망이거든. 이렇게 속으로 분개했지만 할머니 신세를 면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사 오는 날이었다. 옆집에 산다는 여자가 인사를 왔다. 나는 반갑고 한편 놀라웠다. 아파트에도 이웃이란 관념이 남아 있는 게 반가웠고, 그 여자의 미모가 놀라웠다.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그 여자의 미모는 싱싱하달 순 없었지만 유달리 착하고 밝은 표정 때문에 눈부시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여자가 내 이웃이라는 게 예기치 않은 행운처럼 즐거웠다.

  처음 해보는 아파트 생활이라 공연힌 불안하다가도 벽 하나 사이로 그 여자가 이웃해 있다고 생각하면 슬며시 마음이 놓였다. 가끔 그 여자의 어린 딸이 치는 서투른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도 즐거웠고, 큰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싫지 않았다. 요컨대 절대적인 단절을 보장해주리라고 알았던 두터운 콘크리트 벽이 인기척을 전해주는 게 반가웠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와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이웃을 잘 만났다고 생각했고, 그 집 아이들을 보면 남다른 정을 느꼈다.

  언젠가는 길에서 그 여자를 만났는데,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많이 수척해진 것 같았지만 얼굴엔 여전히 그 착하고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 후 달포쯤 지나서 반상회 날이었다. 그 여자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몸과 마음씨가 함게 고와 보이는 이가 암이라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쇠처럼 튼튼한 이가 몹쓸 병마에 붙들리는 것도 적지 않게 보아왔고, 어제 헤어진 이의 부음을 오늘 아침에 듣는 일조차 겪어봤지만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보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인정사정 없는 게 병이라지만 그 착하고 밝은 미소를 앗아가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잘 못 이루었다.

  제발 그 아름답고 착한 이가 오래 살게 해주소서. 그날 밤도 그 후에도 나는 그 여자 일이 걱정될 때마다 이렇게 간절하게 빌었다. 그 여자가 퇴원했단 소식을 듣고도 바로 문병을 가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 아무리 심성이 밝고 고운 이지만 암과 싸우기 위해선 독하고 험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변한 그 여자를 보는 게 겁이 났다. 차라리 안 보고 아름다운 이로서 길이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같이 문병가자는 딴 이웃들의 권고를 받고 그 여자를 보러 갔다. 그 여자의 병상은 내가 멋대로 상상하고 겁을 낸 것처럼 그렇게 참담한 게 아니었다. 건강할 때보다 많이 수척해 있었지만 건강할 때보다 한층 착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건강할 때의 그 여자의 밝음은 눈부신 거였지만, 병상의 밝음은 고개가 숙여지는 거였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자신의 병명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여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샌 우리 큰애가 대학교 갈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너무 과하게 욕심부리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 집 큰애는 고등학교 일 학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과욕이라니.

  나는 적어도 내 첫손자가 장가드는 것까지는 보고 싶다는 평소의 내 과욕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문득 암처럼 고약한 게, 정말 두려워하는 건 목숨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아니라 저런 해맑은 무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희망이 생겼다. 그 여자가 암을 극복하고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내 예감이 들어맞을려나 보다. 그 여자는 요새 만날 때마다 좋아지고 있다.

  어제는 커다란 시장 바구니에 과일을 가득 사가지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 여자와 만나기도 했다. 아직도 창백했지만 백합처럼 과왔다.

  그 여자는 알까? 내가 마음으로부터 그 여자의 건강을 빌면서 손자가 결혼할 때까지 살고 싶은 내 과욕을 줄여서라도 그 여자의 목숨에 보태고 싶어하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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