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설날 세 장면

샌. 2020. 1. 27. 21:47

# 1

 

귀성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았다. 40대 부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둘이었는데 전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명절 전 휴게소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 설빔을 차려입고 환한 미소를 띠고 기차에 오르는 TV에 나오는 명절 풍경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이 가족은 그중에서도 유별나서 눈길이 갔다. 두 아들은 휴대폰만 붙잡고 있고, 부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각자 제 몫을 가져와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각자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남편한테서는 서운하면서 뭔가 미안해하는 기색도 보였다.

 

저 나이였을 때 우리 가족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억지로 따라나서고, 아내는 일찍 간다고 투덜대고, 나는 장남의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돌격 앞으로'을 외쳐야 했다. 안쓰러워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돌아올 때는 부디 저 가족의 얼굴에 미소가 띠게 되기를.

 

# 2

 

세배를 드리는데 어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소리가 떨렸다. 어머니는 올해 구순을 맞으셨다. 9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자식에게는 납덩이로 다가온다. 야속하게도 세월이 어느새 이만큼 흘렀다. 하긴 자식도 70을 바라보면서 같이 늙어가고 있다.

 

백세 시대를 자랑하지만 장수가 축복은 아니다. 내 몸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내 정신 지키지 못한다면 생물학적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머니의 근심도 거기서 나올 것이다. 내 없으면 너희들 각자 편하게 지낼 텐데, 이게 어머니의 입버릇이 되었다. 그런 걱정 끼쳐드리는 게 불효니 더 마음이 쓰리다. 이리저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

 

# 3

 

딸이 손주를 데리고 찾아왔다. 이제 막 세상에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생명의 명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손주의 재롱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산다는 게 '서럽고, 꿈 같고, 우습다'. 이런저런 번민에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수면제 신세를 졌다. 누구라도 그런 것일까. 술기운이라도 빌리고 싶은 우울 모드 속 설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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