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수보리 장로에게 이르셨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가 저 옛날 연등부처님 회상에 머물 때 그곳에서 얻은 진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서 연등부처님 회상에 머무실 때 그곳에서 얻으신 진리가 없겠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살이 깨달음의 나라를 빛내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깨달음의 나라를 빛낸다 함은 곧 빛냄이 아니라 빛냄이라 이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보살들은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할 것이니, 보살은 마땅히 모양에도 소리에도 냄새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보살은 마땅히 맛에도 느낌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은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몸이 수미산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몸이 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크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몸은 몸이 아니라 큰 몸이라 이름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 금강경 10(깨달음의 땅을 빛낸다 함은, 莊嚴淨土分)
<금강경>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 여기에 나온다.
應無所住而生其心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혜능 선사가 소년 시절에 이 구절을 듣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일자무식의 가난한 나뭇꾼 소년은 바로 스승을 찾아 떠난다. <선의 황금시대>라는 책에서 이 일화를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응당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나도 덩달아 이 구절이 좋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잔상이 오래 남으면서 자석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말씀이다.
<금강경>의 핵심은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내며 살아가라'가 아닐까.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집착 없는 마음이다. 이름할 뿐인 제 현상에 현혹되지 말라. 장자의 말을 빌리면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으로 세상과 만나야 한다. 그것은 논리 너머의 세계다.
결국은 하나로 회귀한다. '나 없는 나'다. 차가워진 겨울 하늘이 더욱 푸르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