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금강경[9]

샌. 2020. 1. 28. 14:50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수다원은 거룩한 삶에 들어간 성자이지만 진실로 들어가야 할 어떤 삶도 없는 성자이기 때문입니다. 모양에도 소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님, 맛에도 느낌에도 생각의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는 님, 이런 님을 '수다원'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사다함은 한 번 더 세상에 와서 깨달음을 이룰 성자이지만 참으로 오고 감이 없는 님, 이런 님을 '사다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아나함은 이 세상에 다시 올 일이 없는 성자이지만 참으로 다시 오지 않음도 없는 님, 이런 님을 '아나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아라한이라고 할 그 어떤 나도 없는 님, 이런 님을 '아라한'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아라한이 만약 '나는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스스로 있는 나', '죽지 않는 나', '바뀌지 않는 나', '숨 쉬는 나'에 얽매이는 것이 되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두고 '모든 다툼이 사라진 삼매를 얻은 님들 가운데 으뜸인 아라한, 모든 욕심을 여읜 님들 가운데 으뜸인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진실로 '나는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다'라는 생각을 내는 일이 없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제가 만일 '나는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다'라는 생각을 낸다면 부처님께서는 저를 일러 '맑고 고요한 삶을 즐기는 수행자'라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하신 분이시여, 제게는 진실로 '다툼이 길이 사라진 삶'이라고 할 나도 없고 '맑고 고요한 삶'이라고 할 나도 없기에 부처님께서는 저를 일러 '다툼이 길이 사라진, 고요한 삶을 즐기는 수행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금강경 9(모습이 없는 온 모습, 一相無相分)

 

 

여러 깨달음의 단계에 이른 성자들에게 공통된 하나가 있다. '나 없는 나'다. 수보리는 자신을 깨달은 아라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맑고 고요한 삶을 즐기는 수보리가 여기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라한이고, 맑고 고요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나 없는 나'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으로 연결된다. 다툼이 사라지고 욕심을 여읜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여기에 접근할 수 있을까. '나 없는 나', 그 무차별성의 세계를 단 몇 초만이라도 경험할 수 있을까. '나 없는 나'는 아예 내 것이라는 게 없다. 재물이나 사람한테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불교의 가르침은 너무 높고 먼 것 같다.

 

내 작은 머리로 고작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과 비교하며 열패감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불행의 원인은 대부분 여기에서 나온다. '나 없는 나'는 우선 '나는 나다'라는 확고한 의식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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