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호명된 영화다.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극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변호사 역을 맡은 로라 던만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스칼렛 요한슨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어도 마땅한 영화다.
'결혼 이야기'는 결혼보다는 이혼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연극 연출가와 배우인 찰리와 니콜은 여덟 살의 아들 헨리를 두고 있는 부부다. 작은 일에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헤어지기로 한다. 처음에는 변호사를 쓰지 않고 대화로 마무리 지으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니콜이 이혼 전문 변호사를 만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난장판이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미국의 이혼 사법 절차에 대한 고발인지 모른다. 둘은 이혼을 결심하고도 사이가 좋다. 왜 이혼하려는 건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사소한 이유다. 그런데 변호사가 개입하자 수면 아래에 있던 불만이 폭발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말꼬리를 잡아야 하고 트집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전투구 싸움을 벌일 때 당사자의 상처는 깊어지고 대신 변호사만 돈을 번다.
영화에서 제일 격한 부분은 둘이서 폭풍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라도 억눌린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둘의 미래를 위해서는 나을지 모른다. 싸움의 끝에서는 너무 과한 말을 했다고 미안해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이혼하지만 서로에 대한 연민과 애틋한 마음은 남아 있는 부부다. 원수가 되어서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와는 다른 문화인 것 같다.
'결혼 이야기'는 현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맞아, 라고 내심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두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면서 함께 살아내는 과정이 어찌 순탄할 수 있겠는가. 덜컥 헤어지는 결심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참고만 사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결혼 생활은 그 가운데 중용을 찾아내는 절묘한 줄타기 같다.
영화 마지막에서 니콜이 헨리를 데리고 가는 찰리를 부르더니 그의 풀린 구두끈을 말없이 묶어 주는 모습이 찡했다. 이혼보다는 이혼 뒤 둘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남겨진 자식을 위해서는. '결혼 이야기'는 한 이혼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 더욱 실감나고 애절하게 다가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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