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듣고 세종과 장영실을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해졌다. 장영실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자인데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마지막에는 벌을 받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단순히 임금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
장영실은 관노 신분이면서 종3품 벼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자적인 기술 입국을 꿈꿨던 세종의 명으로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등 여러 과학기기를 제작했다. 세종의 신임이 두터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런데 이 영화 '천문'에서는 둘의 관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깝게 나온다. 왕과 신하의 신분을 떠난 벗이며 동지 같다. 장영실은 왕의 침실에서 같이 있기도 한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신하들에 둘러싸인 세종은 외로움을 느끼고, 그런 갈증을 장영실과의 만남을 통해 푼다. 재주 많고 임금의 신임을 받는 장영실은 주변의 시기나 모함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명나라로 압송되어 가는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세종이 어가가 망가지는 계획을 꾸미고 실행한다. 이것이 세종 24년에 발생한 안여(安輿) 사건이다. 세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결국 장영실은 곤장을 맞고 쫓겨나고 다시 복귀하지 못한다.
영화 '천문'은 이런 엉뚱해 보이는 해석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한석규와 최민식, 두 명품 배우의 연기도 좋다. 자주국가를 꿈꾸는 세종에 비해 신하들은 명나라를 숭배하며 세종과 마찰을 일으킨다. 심지어는 한글 창제마저 방해한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는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씨가 애틋하다. 세종이 신하들을 질타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명나라가 없으면 조선이 망하느냐? 조선은 조선만의 언어와 시간이 있어야 한다."
"백성들의 천품을 교화시킬 수 없다면, 그대들은 정치를 왜 하는 것이오? 단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함인가?"
*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낭보가 들린다.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 수상까지는 중계를 보았는데, 솔직히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휩쓸어 4관왕이 되었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비영어권 작품이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것은 최초라고 한다. 한국 영화 경사의 날이다.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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