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 장로가 부처님께 여쭈었네.
"행복하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얻으신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얻을 것이 없는 깨달음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은 어떤 작은 법조차 얻을 것이 없는 그런 깨달음입니다.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 금강경 22(얻을 진리가 없는 진리, 無法可得分)
사월초파일이면 동네 할머니들은 깨끗이 빨아 준비한 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청계사로 갔다. 그 뒤를 아이들이 따랐다. 나도 외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외할머니 머리 위에서는 부처님께 드릴 곡식을 싼 보퉁이도 흔들리고 있었다. 청계사는 이웃 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나왔다. 할머니들이 법당 안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절에서 주는 음식을 얻어먹으며 즐겁게 놀았다. 사월초파일은 잔칫날 분위기였다.
외할머니는 사월초파일 날, 일 년에 딱 한 번만 절에 가셨다. 그래도 믿는 얘기가 나오면 '나는 절을 믿는다'고 하셨다. 외할머니가 불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셨을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소박한 바람만 있었을 것이다. 새벽에 정화수 떠 놓고 비는 마음을 넘어서지는 않았으리라. 템플 스테이에 다니고 명상 훈련을 받는 고도로 세련된 현대인에 비하면 외할머니의 신앙은 원시적인 시늉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위 없이 바른 깨달음은 어떤 작은 법조차 얻을 것이 없는 그런 깨달음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현대인은 지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는다. 60여 년 전, 내 유년의 초파일 풍경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