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샌. 2020. 6. 14. 11:34

현장 실습생으로 CJ에서 일하던 특성화고등학교 김동준 학생은 회식 자리에서 선임자한테 뺨을 맞았고, 며칠 후 회사 기숙사 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폭행이었지만 그 전에 과도한 업무와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가 있었다. 2014년 봄에 일어난 일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에 들어간 김 군은 현장 실습을 나가서는 전혀 엉뚱한 일을 배정받았다.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진천 육가공공장에 배치된 것이다. 학교에만 있다가 갑자기 현장에 나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모든 실업계고등학생이 겪는 문제지만 사회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은유 작가가 김 군의 주변 사람을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김 군 가족과 특성화고 담당 선생님, 재학생 및 졸업생, 사건 담당 노무사, 또 다른 사고 피해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애써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이 드러난다.

 

실업계 학생들은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가는 곳이라는 인식조차 있다. 그러나 그들도 꿈과 포부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세월호가 떠올랐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아이들에게는 "가만 있으라"고 해 놓고 어른들은 탈출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소모품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권위에 순종하는 법은 배우지만 자신을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김동준 군의 부모님은 무조건 '참고 견디라'고 한 것을 제일 후회했다.

 

나도 자책 되는 바가 많다. 교직 생활하는 동안 실업계 고등학교에 두 번 근무했지만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인문계 과목이라는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했던 게 사실이다. 부조리를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은 범죄며 집단 폭력에 가담하는 행위다. 그때를 떠올리면 부끄럽다. 왈가왈부 사회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이 왜 그렇게 책임 규명과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길거리에 나서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서로 연대하며 힘을 얻고 싸워나간다. 동준이 어머니의 말이다.

 

"자식 보내놓고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예요. 그걸 기억하며 살아내는 건, 죽지 못해 살아내는 그 이유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의 위로도 도움이 안 되고 속으로 자꾸만 움츠러져요. 가슴속에 둘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각자 있겠지요. 세상에 대한 원망도 내가 힘이 있어야 하더라구요. 고칠 수 없고 바뀌지 않는 세상, 아무것도 아닌 힘없는 부모가 무슨 말을 어찌 할 수 있을까요. 그 속의 울분이, 화염이, 폭폭함이 폭발하면 주체할 수 없어 그저 그러고 있을 뿐이지요. 어떤 죽음이든 너무 허무하고 슬프지만 남은 자들이 견디어내야 하는 감정의 무게가 있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사형보다 더한 형벌을 받으며 살아낸답니다. 그 모습을 대단하다며 격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자식 보낸 게 훈장이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거든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며칠 전에도 인천에서 여고생 두 명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보도를 봤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사고나 사연은 얼마나 많겠는가. 나는 아무 관계 없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린 생명을 자살로 내모는 공범자인지 모른다.

 

책의 끝 '추천의 말'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체념이 쌓여, '보지 않을래, 알고 싶지 않아'라는 외면이 반복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방임이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야'라는 목소리로 이어져 우리가, 사람을 죽였고, 지금도 죽이고 있다.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인간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소모품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의 몸짓이다. 이미 끝난 일을 기억해서 무엇을 바라느냐는 말에 이 책은 답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토록 잔인한 사회를,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헐값으로 취급하는 사회를 거부하고 안전한 사회로 다시 세워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옷의 세계  (0) 2020.06.27
히말라야 환상방황  (0) 2020.06.21
문장의 온도  (0) 2020.06.06
연필로 쓰기  (0) 2020.05.28
7년의 밤  (0)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