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7년의 밤

샌. 2020. 5. 24. 10:55

정유정 작가의 스릴러 소설이다. 여성작가라는 선입견을 씻어줄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다. 그러면서 상황이나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는 아기자기하며 세밀하다.

 

불의의 사고로 낭떠러지로 내몰린 뒤 아들을 지키려는 남자(최현수)와, 딸의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는 다른 남자(오영제)의 대결 이야기가 숨 막히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광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는데 범죄와 폭력 스토리는 빠질 수 없다.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그중에서 제일 주목된 인물은 오영제다. 내가 아는 싸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싸이코패스는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특징이다. 자기 물건을 부순 고양이를 창 밖으로 던져 죽인 건 어릴 때다. 타자와의 감정 이입이 전혀 되지 않는다. 결혼하여 생긴 가족 역시 소유의 물건이다. 끔찍한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가 아무 번민 없이 일어난다. 오영제는 그걸 '교정'이라고 부른다. 싸이코패스의 바탕에는 지배욕과 인정욕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인물들, 위인전에 나오는 그런 인물들은 어쩌면 싸이코패스적 기질이 있는지 모른다. 수천, 수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한다. 거기에 강력한 지배욕과 냉정함이 따른다. 인간 성격의 병적이 특징이 조건만 잘 맞으면 영웅이 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사건을 만날 때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상당 부분이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일지 모른다. 이 소설에 나오는 오영제나 최현수는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타입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건만 그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찾아간다. 둘 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다. 운명이나 업보란 성격에 새겨진 지문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내 취향 탓인지 소설 전반부가 훨씬 재미있고 흡인력이 높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후반부는 집중이 덜 된다. 어찌 됐든 <7년의 밤>은 무척 흥미로운 소설이다. 이야기의 틀을 잡고 박진감 있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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