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백제의 석탑은 두 개인 걸로 알고 있다. 미륵사지와 정림사지에 있는 석탑이다. 정림사지석탑이 미륵사지보다 후대에 만들어졌고 크기도 적지만 미적인 면에서는 앞선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예쁘다.
정림사(定林寺)는 백제의 사비 도읍기(538~660)에 건립된 사찰로 사비도성 내부의 중심지에 있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기와 명문으로 정림사라 칭하고 있지만, 백제시대 때 절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절은 중문, 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국보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하는 과정의 시원양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석탑이다. 이 석탑은 전에는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렸다. 백제 사비성을 점령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탑의 1층 탑신에 승전기인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절을 건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는 망했다. 망국의 설움을 천 년이 넘게 탑이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강당 안에는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있다. 뜰의 탑은 말짱한데 석불은 극심하게 훼손되어 몸통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고려 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폐사지는 인간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모든 것의 흥망성쇠를 말해준다. 폐사지만큼 쓸쓸한 풍경도 없다. 그런 점에서 너무 깔끔하게 정비된 폐사지는 생뚱맞다. 유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잡초가 자라고 그 속에 풀벌레 소리라도 들리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좋지 않을까. 요사이 폐사지는 세트장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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