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1]

샌. 2020. 12. 12. 12:08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 마르코 1,1

 

 

마르코복음서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한때 아무개 목사를 따른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강연장에서 성서 읽기에 대한 충고를 들었다. 마르코복음서만 100번을 집중적으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2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읽은 횟수를 체크하다가 말았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100번을 채웠다. 평균하면 일주일에 일독을 한 셈이었다. 거의 20년 전이었다.

 

이제 다시 마르코를 읽으려 한다. 대학생 때 개신교 교회를 통해 기독교를 접한 이래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그에 대한 답은 내 신앙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예수를 만난다. 복음서 기자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모습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예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마르코복음서는 4복음서 중에서 제일 먼저 써졌다. 예수 사후 40년이 지난 AD 70년 경이다. 아무개 목사가 마르코를 추천한 이유도 정통 기독교 교리의 영향을 가장 작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르코에는 예수 탄생 신화가 없다.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주목받지 않았던지, 아니면 기자가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것이.

 

그때 마르코를 읽고 나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는 지금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희미하긴 하지만 바울의 구속론(救贖論)에 회의를 가졌던 것은 같다. 마르코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원복(原福)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예수의 가르침과 현재 기독교의 교리가 과연 일치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더욱 강해졌다.

 

마르코복음서 1장 1절의 핵심 단어는 '그리스도'와 '복음'이다. 마르코가 이 기록을 쓴 이유가 두 단어에 압축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에서 왕을 임명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즉,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갈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의미다. 로마의 압제에서 민족을 해방시켜 줄 구세주인 셈이다. 뒤로 가면서 영혼의 구세주로 의미가 변화한다. 마르코복음서에 쓰인, 민중이나 제자가 말한 그리스도는 앞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 나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성서'를 읽고 있는데, '복음'에 관한 주석이 이렇게 적혀 있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선포하신 복음을 뜻하기도 하고, 예수에 관한 복음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앞의 의미가 더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제 예수님이 전하신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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