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우주를 일곱 가지 보배로 가득 채워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고 해도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선남자 선여인이 이 가르침 가운데 네 구절의 게송만이라도 거뜬히 받아 지녀 즐겨 읽고 절로 외우면서 이웃과 함께 나눈다면 이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뛰어날 것입니다.
어떻게 함께 나눌 것입니까? 모양에도 생각에도 걸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러하겠습니까?
'나'라고 하는
모든 것들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나'라고 하는
모든 것들
그림자요 이슬이요
번갯불이니
이렇게 보아야 하리
이렇게 보아야 하리."
님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침을 마치셨네. 님께서 이렇게 가르침을 마치시자 행복하여 두 손 모은 장로와 모임에 함께한 비구 비구니와, 믿음이 맑고 깊은 선남선녀와, 모든 세상 하늘중생, 아수라들이 우러러 함께 듣고 큰 기쁨에 젖었네. 외로움 벗는 동산 별 같은 대중이 안팎으로 밝아진 금강의 빛 속에서 절로 믿고 절로 받고 절로 받들며 제따 숲 바람처럼 '나' 없는 삶 살았네.
- 금강경 32(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물거품, 應化非眞分)
이렇게 <금강경>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 님의 가르침을 들은 모든 대중이 금강의 빛 속에서 '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가 없는데, 집착이나 시비나 머뭄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에 읽은 <금강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 없는 나'다. '금강'은 전도몽상(顚倒夢想)을 깨뜨리는 번갯불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을 읽고 너는 얼마나 변했느냐?" 고개를 끄덕일 때는 그때뿐, 일어서면 '나'는 펄펄 살아 있다. 하지만 알아차리고 나는 '나 있는 나'를 본다. 그것만으로도 한 발자국 전진한 것이리라. 이번에 <금강경>을 읽는 도중에 아내와의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 장기간 쌓인 누습이 쉬이 바뀔 수 없었다. '나'를 죽여야 해결이 되는 사안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강경>을 읽으며 '나 없는 나'를 붙잡고 있었던 열매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며 감사한다.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한문으로 적는다. 맨 끝 글자는 '관(觀)'이다. 결국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로 귀결한다. 사람의 삶이란 '제대로 보기'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인지 모른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