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소문이 돌다 / 정윤옥

샌. 2021. 3. 20. 09:43

복사꽃 활짝 핀 솔이네 집에 든 좀도둑

애지중지 보살펴온 난 몇 개 손 탔다

적금 부을 십오만 원은 손도 대지 않았다는데

 

그 별난 손님

베란다 화분들만

마구 헤집어놨다지

 

며칠 전 나도

시어골 골짝 몰래 들어가

고추순, 오이순, 다래순에 달래까지

사정없이 캐고 뜯고

훑어왔었는데

 

그 손님

꽃 도둑이면

난 영락없는 봄 도둑이네

 

- 소문이 돌다 / 정윤옥

 

 

그렇다면 나 역시 이 화려한 봄날의 활동사진을 공짜로 구경하는 도둑놈이 아닌가. 모델료를 내지 않고도 예쁜 꽃을 마음대로 찍는다. 멋진 자태의 홍매와 데이트를 하며 희희낙락한들 희롱죄로 고소 당하지도 않는다. 공으로 남의 것을 누리면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 그런데 이 요염한 봄의 유혹에 누군들 좀도둑이 되지 않으리. 하느님도 슬며시 미소를 띠며 바라보실 것 같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 임복순  (0) 2021.04.12
비망록 / 문정희  (0) 2021.03.27
눈뜬장님 / 오탁번  (0) 2021.03.09
구들목 / 박남규  (0) 2021.02.28
설날 아침 / 남호섭  (0) 2021.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