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인데
앞집 할아버지 화났다.
아들이 주고 간 용돈
그새 어디 둔지 몰라 찾고 있는
할머니한테도 화나고
또 까먹고 간
손자 장난감에도 화나고
고속도로 꽉 막혔다는
뉴스에도 화나고
새배 마치자마자
텅 빈 집 안,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 설날 아침 / 남호섭
명절 후유증은 고향에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가 막힌다고 경쟁하듯 박차고 떠나면 텅 빈자리가 심연처럼 깊고 크다. 화가 나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앞집 할아버지만이겠는가. 뭐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할아버지 심사가 불편한 게 틀림 없다. 명절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회오리바람 같은 건지 모른다. 한 바탕 휘저어놓고는 나 몰라라 슬그머니 사라진다. 덕분에 우리의 허약한 바탕을 깨닫게 되는 이점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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