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설날 아침 / 남호섭

샌. 2021. 2. 14. 11:32

설날인데

앞집 할아버지 화났다.

 

아들이 주고 간 용돈

그새 어디 둔지 몰라 찾고 있는

할머니한테도 화나고

 

또 까먹고 간

손자 장난감에도 화나고

 

고속도로 꽉 막혔다는

뉴스에도 화나고

 

새배 마치자마자

텅 빈 집 안,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 설날 아침 / 남호섭

 

 

명절 후유증은 고향에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가 막힌다고 경쟁하듯 박차고 떠나면 텅 빈자리가 심연처럼 깊고 크다. 화가 나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앞집 할아버지만이겠는가. 뭐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할아버지 심사가 불편한 게 틀림 없다. 명절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회오리바람 같은 건지 모른다. 한 바탕 휘저어놓고는 나 몰라라 슬그머니 사라진다. 덕분에 우리의 허약한 바탕을 깨닫게 되는 이점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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