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비망록 / 문정희

샌. 2021. 3. 27. 10:12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을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 비망록 / 문정희

 

 

비망록이란 그래도 잊지 말자는 다짐일 게다. 젊은 시절의 비망록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한 생애를 허둥거린들 어떠리. 아프고 흔들린다는 건 내 가슴에 새긴 별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별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별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별을 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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