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활짝 핀 솔이네 집에 든 좀도둑
애지중지 보살펴온 난 몇 개 손 탔다
적금 부을 십오만 원은 손도 대지 않았다는데
그 별난 손님
베란다 화분들만
마구 헤집어놨다지
며칠 전 나도
시어골 골짝 몰래 들어가
고추순, 오이순, 다래순에 달래까지
사정없이 캐고 뜯고
훑어왔었는데
그 손님
꽃 도둑이면
난 영락없는 봄 도둑이네
- 소문이 돌다 / 정윤옥
그렇다면 나 역시 이 화려한 봄날의 활동사진을 공짜로 구경하는 도둑놈이 아닌가. 모델료를 내지 않고도 예쁜 꽃을 마음대로 찍는다. 멋진 자태의 홍매와 데이트를 하며 희희낙락한들 희롱죄로 고소 당하지도 않는다. 공으로 남의 것을 누리면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 그런데 이 요염한 봄의 유혹에 누군들 좀도둑이 되지 않으리. 하느님도 슬며시 미소를 띠며 바라보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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