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뒷산길을 걸을 때였다. 굽은 길을 돌아나가다가 화들짝 놀랐다. 길 옆에서 한 여자가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드러내고 볼일을 보고 있었다. 거리는 5m 정도로 무척 가까웠다. 뒤로 비스듬히 돌아앉은 여자는 외간남자가 가까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황당 시추에이션을 어떡 하지?
나는 알아채지 못하게 돌아서서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도망쳤다. 다행히 서너 걸음만 걸으면 보이지 않게 길은 굽어 있었다. 그리고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인기척이라도 내서 여자가 알아챘더라면 얼마나 당황했을 것인가. 내가 민망한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었다. 방심은 가끔 이렇게 황당한 일을 생기게 한다. 사전에 여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을 테지만 때로 투명인간이 있음을 잊은 것 같다.
4년 전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을 때였다. 2층 침대 세 개가 놓인 6인실이었는데 이미 한 침대에는 배낭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먼저 온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욕실 수건걸이에 빨간색 여자 팬티가 당당하게 걸려 있는 것이었다. 여자 팬티를 코 앞에 두고 샤워하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해외여행을 하자면 이런 것도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걸까.
좀 지나니 젊은 처자가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마에 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 여자였다. 팬티의 주인공이 분명했다. 욕실에 당신 팬티가 있다고 알려줘야 하나, 모른 체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영어 단어 몇 개를 입 안에서 굴려봤지만 괜히 어색해서 아무 내색도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릴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들어갔더니 배낭도 팬티도 사라졌다. 그 인도 여자는 나 이상으로 민망했을지 모른다.
코로나 이전에 단지 안 헬스장에 나갈 때 레깅스를 입고 오는 아가씨가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앞에 있으면 민망해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자꾸 몸매가 어른거려 그 여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코끼리가 생각나는 법이었다. 반면에 여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거리낌이 없었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왜 심란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레깅스는 자꾸 눈에 익으니 아무렇지 않아졌다. 레깅스를 처음 봤을 때의 거부감이 너무 쉽게 없어지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민망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느낌은 문화나 관습의 영향이 크다.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닌 것이 된다. 도덕적 잣대로 비교하고 판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일상의 면모에서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까. 진짜 민망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본체는 둔 채 그림자만 보고 황망해하는 일이 허다하다. 최근의 젠더 갈등 등 특히 남녀 사이에 그런 문제가 많다. 제대로 민망하고 제대로 부끄러워할 줄 알라고 산길의 아줌마, 뉴질랜드의 처자, 헬스장의 아가씨가 말해주는 것 같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절함이 통(通)하다 (0) | 2021.08.02 |
---|---|
한 장의 사진(27) (0) | 2021.07.21 |
아침이슬 (2) | 2021.06.25 |
늙어서 그래요 (0) | 2021.06.05 |
답답하면 바둑을 둬요 (0) | 2021.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