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29]

샌. 2021. 11. 4. 11:07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 몇이 예수께 몰려왔는데, 그분 제자들이 더러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와 모든 유대인은 조상 전통을 지켜, 한 웅큼 물로라도 손을 씻지 않고는 먹지 않는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몸을 씻지 않고는 먹지 않는다. 그밖에도 지켜야 할 전통이 많이 있으니, 잔이나 옹자배기, 놋그릇이나 침대 따위도 노상 씻는다. 그래서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어째서 당신 제자들은 조상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사야가 위선자인 당신들을 두고 잘도 예언했으니,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섬기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도다.

헛되이 나를 떠받드나니

사람의 계명을 가르치기 일삼는도다.'

당신들은 하느님 계명을 버리고 사람 전통을 지킵니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당신네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 계명을 잘도 저버립니다. 모세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거늘, 당신들은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코르반', 곧 '저한테서 봉양받으실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라고만 하면 그만이라면서 부모에게 더는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전통을 전수한답시고들 이런 비슷한 짓을 많이 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군중을 다시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모두들 듣고 깨달으시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이란 없습니다.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리고 군중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에 관해 여쭈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도 그토록 깨닫지 못합니까? 정말 못 알아듣겠습니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사람을 더럽힐 수 없으니,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갑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셨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힙니다. 무릇 나쁜 생각은 안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속임수, 방탕, 악한 눈길, 모독, 교만, 어리석음 따위 말입니다. 이런 악한 것 모두가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힙니다."

 

- 마르코 7,1-23

 

 

율법과 전통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단호하다. 율법이기 때문에, 전통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되었다. 종교를 빙자해서 인간을 옥죄는 짓을 예수는 반대한다. 바리사이파가 대표적이다. 예수한테서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운동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유대교의 열성 분자들이었다. 반면에 사두가이파는 대놓고 로마 권력과 결탁하며 유대교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제일 부패했으며 가장 비난을 받아 마땅했다.

 

바리사이파 입장에서 볼 때 예수는 율법과 전통을 무시하는 이단아였다. 의무적인 금식을 지나치지 않나,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지 않나, 또 여기서처럼 정결례도 지키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신앙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행위였다. 아마 바리사이들이 수없이 예수를 찾아와서 따지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예수와 바리사이와의 토론이 자주 나온다.

 

유대교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수지만 바라사이의 위선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다른 부분에서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맹비난한다. 그들은 종교의 탈을 쓰고 민중을 억압하는 자들이었다. 사두가이의 위악은 오히려 전선이 분명하다. 탐욕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사이처럼 고결한 척하는 자들에게 민중은 오도된다. 소경이 낭떠러지로 길을 인도하는 꼴이다. 예수가 바리사이파를 더 위험하다고 본 이유일 것이다.

 

예수는 율법과 전통을 넘어 현상의 핵심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는 이미 죽은 종교다. 예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친다. 바리사이의 하느님이 아니라 새로운 하느님을 보여준다. 예수가 볼 때 딱딱하게 굳어버린 율법과 전통은 민중을 옥죄는 족쇄였다. 안타깝게도 예수의 메시지는 대다수 민중들, 심지어는 가까운 제자들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대들도 그토록 깨닫지 못합니까? 정말 못 알아듣겠습니까?" 예수의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예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덕을 나열하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 소화되고 뒤로 나올 뿐이다. 부정한 음식물을 구분하고 가려먹는 짓이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끊을 것은 마음의 악한 뿌리가 아닌가. 바리사이는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고 믿는다. 위선(僞善)이기도 하지만 나는 인간의 무지(無知)가 더 큰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어진 전통과 규범에 충실할 뿐 자신을 돌아보는 내성(內省)을 소홀히 한 탓이다. 더구나 강력한 믿음이 뒷받침되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커진다. 우리 시대의 바리사이는 누구인가? 그때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바리사이를 - 내 안에 있는 바리사이를 포함하여 - 분별하는 눈이 중요한 게 아닐까. 장님 뒤를 따라가며 바보의 장단에 춤을 출 수는 없는 일이다.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코복음[31]  (0) 2021.12.06
마르코복음[30]  (0) 2021.11.22
마르코복음[28]  (0) 2021.10.25
마르코복음[27]  (0) 2021.10.17
마르코복음[26]  (0) 2021.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