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해미읍성 회화나무

샌. 2012. 4. 27. 11:53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의 상흔이 남아 있다.이 회화나무도 그중 하나다.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철삿줄로 머리채를 감고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고 죽였다. 1790~1880년대에 일어난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적어도 1천 명은 될 거로 추정한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붙잡혀온 신자 수가 너무 많아그냥 구덩이에 밀어 넣고 생매장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수령 300년 정도인 이 회화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린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한 얼마나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을 것인가. 그래선지 나무는 기력이 많이 상해 있다. 나무도 속울음을 슬피 울었으리라. 가톨릭에서는 이 나무를 순교목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해미성지 안에 있는 기념관에는 이 나뭇가지도 전시되고 있다.

 

나희덕 시인은 이 회화나무가 간직한 어둠을 느껴보라고 이렇게 권한다.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

먼저 저녁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

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

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 많기도 하지만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

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손끝은 그 상처를 아프게 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

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나오며

단 한번만 회화나무 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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