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나귀가 돌리는 연자매를 목에 매단 채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손이 그대를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끊어 버리시오. 두 손을 가지고 지옥으로, 그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발이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끊어 버리시오.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기보다는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눈이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뽑아 버리시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기보다는 애꾸눈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모두 불로 소금절이가 될 것입니다. 소금은 좋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제맛 나게 하겠습니까? 그대들 안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시오."
마르코 9,42-50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영화에는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는 광신도가 나온다. 믿음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확신하는 그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며 아내를 교살한다. 무지몽매하고 부패한 신앙을 고발하는 영화다. 이 구절을 읽다가 영화가 생각난 것은 성경의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예수의 이런 말씀은 무시해 버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는 사람은 아직 하나도 보지 못했다. 혹시 자신의 죄는 기도하고 통회하면 용서받는다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영화 '밀양'에서도 그런 철면피한 사람이 나온다.
굉장히 섬뜩한 말씀이다. 다른 때와 달리 예수는 단호하고 래디컬하다. 예수를 따르는 일이 얼마나 초인적인 결단을 요구하는지 볼 수 있다. 아예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믿음에 투신하는 것은 절벽 낭떠러지에 매달리듯 자신을 던지는 행위다. 그래야 생명을 얻는다고 예수는 우뢰로 말씀하신다.
'소금'이 나오는 뒷부분은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은 소금을 간직하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당부로 이어진다. 여기서 소금은 예수 따름의 에센스인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소금의 제일 큰 작용은 부패의 방지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예수 공동체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예수의 간절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알아들어먹은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