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나가 오후 시간을 바둑과 당구로 놀았다. 기원 바둑은 3년 만, 당구는 5개월 만이었다. 길게 뜸했던 것은 코로나가 주원인이지만 다른 사연도 있었다.
'勝固欣然 敗亦可喜' - 바둑 친구를 기다리면서 기원 벽에 걸린 글씨를 오래 바라보았다. 소동파의 '관기(觀棋)'라는 시에 나오는 문구인데 '이기면 응당 즐겁지만 져도 또한 기쁜 일이다'라는 뜻이겠다. 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바둑을 대하는 태도는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한탄하거나 서러워할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오랜만의 바둑과 당구였지만 즐거운 줄은 모르겠다. 집에서 혼자서 노는 버릇이 되어선지 사람 북적이는 곳에 있는 게 피곤하다. 별 영양가치 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또 그런 말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싫다. 홀로 있을 때 느끼는 충만감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라진다. 도리어 외롭고 쓸쓸해진다.
장맛비 내리는 밤길을 걷고도 싶고,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있고도 싶었는데, 망설이다가 결국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덕경>에 나오는 '衆人熙熙 我獨泊兮'를 읊조리면서, 노자 선생님의 자부심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