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34

코로나 미사

망부(亡父)의 41주기를 맞아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다. 그날도 이렇게 추웠을까. 사고를 당하시고 한밤이 지난 후 열 시간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가 무심코 받은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서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 뒤로 40년이 넘는 세월은 많은 아픔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는 짧은 시간의 종교 형식 속에서 아버지를 추억할 뿐이다. 가끔 꿈에 어지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괴로웠는데, 언젠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 뒤로는 꿈에서도 뵐 수 없다. 아버지, 그 나라에서는 편히 쉬십시요~ 코로나 때문에 미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드문드문 앉도록 지정 자리가 있고, 마스크는 당연히 필수다. 성가도 부르지 않는다...

사진속일상 2020.12.04

쥐 / 요사노 아키코

나의 집 천장에 쥐가 사느니라. 빠작빠작 소리남은 끌 잡고 상을 새기는 사람 밤에도 자지 않음과 같으니라. 또 그의 아내와 춤을 추면서 빙 돌아가는 울림은 경마가 달리는 모습. 내 글 쓰는 종이 위에 천장 위 모래며 먼지들 펄펄 날려옴도 그들이 어찌 알 것인가? 그러나 나는 생각하느니 나는 쥐들과 함께 살고 있노라.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랴. 천장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때때로 나를 엿보라. - 쥐 / 요사노 아키코 이웃간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가끔 뉴스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댓글에는 누리꾼의 설왕설래가 무성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한 중재로 윗집 사람을 만나고 나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층간..

시읽는기쁨 2020.12.03

천근만근 무거운 몸

연속적인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줄줄 흘렀다. 닷새 전 아침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계속 집에 있었는데도 감기를 맞은 것이다. 이런 환절기 연례행사는 건너뛰면 좋으련만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사실 올해는 감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찬 바람을 쐬거나 무리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는지 불청객이 노크도 없이 침입했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낮에 방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 것밖에 없었다. 싸늘한 기운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감기에 걸리는 이 유리 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행히 열을 동반하지 않은 콧물감기였다. 약국에서 콘택을 사 먹으니 콧물은 하루 만에 그쳤다. 그러나 미지근한 두통은 계속되었다. 하필 누워 있는 와중에 고모님의 부음을 들었다. 2년..

사진속일상 2020.12.02

빨간 머리 앤

코로나로 집에서 칩거하면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본 캐나다 드라마다. 시즌 3까지 27부작으로 되어 있다. 모두 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1908년에 나온 몽고메리 소설의 원제는 '초록 지붕 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인데,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Anne with an E'다. 앤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한 말인데 앤의 성격을 잘 드러낸 제목인 것 같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드라마가 원작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척 재미있게 봤다. 뒤에 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감흥이 깨어질까 두렵다. 드라마의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캐나다 동부에 있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다. 이 섬에서 쓸쓸히 살아가는 마릴라와 매슈 남매가 사는 초록 지붕 집에 앤이 들어오면서 얘기가 시작..

읽고본느낌 20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