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1

우울에 대한 변명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내용 중에서 우울증을 생물의 진화와 관련시켜 설명한 부분이 흥미가 있었다. 우울증이 진화의 단계에서 생식에 이롭게 작용한 메커니즘의 하나로 보는 특이한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우울은 제거되어야 할 정신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종족 보존이나 개체의 생명 유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중증의 우울증은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보통 멜랑콜리라고 부를 때 그 어감이 가지는 조금은 낭만적인 느낌처럼 우울은 도리어 인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첫째, 우울증이 과거에 이루어졌던 유익한 기능의 잔재라는 해석이 있다. 즉 어떤 유형의 우울증은 원시적 계급 사회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집단 생활에..

읽고본느낌 2004.08.10

아홉살 인생

비디오로 ‘아홉살 인생’을 보았다. 6, 70년대쯤 되는 경상도 어느 중소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우림이라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고 그동안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해 온 여민이 우림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이라면 대부분 옛 추억에 잠기게 하는 내용으로 각자의 아홉살 시절을 되새겨 보게 한다. 다만 이 영화에서도 어른같은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의 대립 구도가 신경을 좀 거슬리게하는데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꼭 모자라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비되어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60년대에 경상도 산골 지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었는데 유교적 전통이 강해서 그랬는지 항상 ..

읽고본느낌 2004.08.08

그리스도의 수난

어제 밤에 본당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을 상영했다. 많은논란과 화제가 된영화라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작고 선명하지 못한 화면 등이 흠이었지만 꼭 옛날의 시골 극장같은 분위기여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영화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부터 죽음까지 하루도 못 되는 마지막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성서에 충실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논란이 되었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로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성서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읽고본느낌 2004.05.07

뮤지컬 `넌센스`를 보다

어제는 연강홀에서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를 보았다. `넌센스 잼보리`는 91년부터 시작된 `넌센스` 시리즈의 세 번째 버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터라 극장이나 공연장은 거의 가지 않는데, 어제는 어쩔 수없이 아내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니 뮤지컬을 직접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용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역동적인 무대의 열기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출연진들의 끼와 재능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긴 하지만 춤, 노래, 연기 실력을 어쩌면 그렇게 고루 갖추고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로버트 앤 수녀역을 한 노현희는 SBS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볼 때와 달리 그녀의 다재다능한새로운 ..

읽고본느낌 2004.02.12

좋은 친구

어제 저녁 인사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길에 선(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에 들렀다. ※ 매그넘 Magnum; 50여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 작가 그룹. 한 장의 사진으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 고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밝은 면보다는 억압받고 고난에 찬 내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제가 묵직해서 여러 가지로 깊은 생각에 젖게 되었고, 서구 문명의 팽창이나 경제 성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전시회였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는 나에게는 특별하면서 참 좋은친구이다. 만난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고 또한..

읽고본느낌 2004.02.10

의식 혁명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의식혁명`(원제; Power vs Force)이 있다. 그는 인간 정신의 진화를 설명하고 우리가 왜 자기 실현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밝히는데, 운동역학이라는 단순하고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는 방법으로 인간이나 사회 의식을 수치화해서 나타내었다.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의 에너지 장이 있고 그것이 각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이나 인식, 태도, 세계관 등에 상응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의식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IQ나 EQ가 유행하듯 CQ라는 의식 지수를 사용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잠재의식에너지→ 700 ~ 1000 --- 깨달음, 언어 이전 600 ------- 평화, 축복 540 ------- 기쁨, 고요함 500 ------- 사랑, 존경..

읽고본느낌 2004.02.05

희망

얼마 전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았다.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용에 흠뻑 빠질 정도로 감명 깊게 보았다. 탈출에 성공한 후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환호하는 모습도 멋졌지만, 앤디가 방송실 문을 잠가놓고틀어준 음악이 교도소 감방에, 작업장에, 운동장에 울려퍼질 때 죄수들이 넋을 잃고 그 소리를 따라 위로 시선을 모으던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런데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희망`이었다. 무고한 앤디가 20년 옥살이를 견디게 된 것도, 또 가석방된 레드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도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난한 이 현실에서 인간을 살리는 것은 빵도 쾌락도 아닌 바로 희망임을 영화는 말해준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는다면 인간의 삶은 흑백의 우중충한..

읽고본느낌 2004.01.13

조나단의 고독

조나단 곁을 모든 갈매기들이 떠나갔다. 아니 그 전에 별나게 행동할 때부터 조나단은 이미 외톨이가 되었다. 가족도, 가까웠던 동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했다. 조나단이 관심을 가진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멋지게 비행을 하느냐였다. 어부들이 던지는 썩은 고기 냄새에 길들여진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행동은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멋지게 날려고 하는 모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서 평범한 갈매기로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이 그를 높은 하늘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는다. 동료들의 몰이해와 비난 가운데 그는 혼자서 비..

읽고본느낌 2003.12.27

바보 이반의 나라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단편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반은 바보이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다 바보라고 부를 만 하다. 그들은 권력도 모르고, 부자가 될 줄도 모른다. 그 나라는 군대도 없다. 그래서 외국 군대가 침략해 와도 대항할 줄을 모른다. 물건이 필요하면 누구에게나 다 가져가라고 한다. 자기 것이라고 모으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육체 노동이 가장 신성하게 대우받는다. 손에 굳은 살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일상으로서의 노동은 즐거움과 행복의 원천이 된다. 노동이 곧 삶이요, 오락이다. 이반이 그 나라의 임금님이지만 일상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이름만 임금이지 하는 ..

읽고본느낌 2003.12.19

전혜린의 가을

......... 긴 여행 - 돌아오지 않는 여행, 깨어남 없는 깊은 잠, 이러한 것들이 가을이면 매년 나의 고정 관념으로 되어 버린다. 여름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의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은 나에게는 너무나 죽음을 갈망하는 자태로 유혹을 보내 온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몇 주일이나 학교도 못 나오게 되고 앓아 눕게 된다. 의사는 신경의 병이라지만 나 자신은 내가 `존재에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절실하고 긴박하게 생과 사만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불면 불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버린다. 가을은 토카이의 시 속에서처럼 저녁 노을에 박쥐가 퍼덕거리는 숲을 지나서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가다가 길목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어린..

읽고본느낌 2003.11.10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이번 주말 집에서 쉬면서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다시 읽어보다. 그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삶이 나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성찰이 된다. 그의 삶 자체가 무언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특히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독일의 촉망받던 신학자며 목사였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반나찌 운동에 가담한다. 1943년 봄에그는 체포되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종전을 몇 달 앞두고 처형되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에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의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신앙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의 ..

읽고본느낌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