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40

파피용

'파피용'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 SF 소설이다. '개미'와 '타나토노트'를 통해 베르베르의 기발한 착상과 상상력에 감탄한 바 있기에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너무 컸었던 기대 탓일까, 앞에서와 같았던 신선한 충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역시 베르베르의 이야기라는상찬을 받을 만한 내용이다. 천재 과학자 이브는 종말을 향해 치닫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대형 우주선 파피용을 건조한다. 크기는 길이가 32km, 지름이 500m인 원통형으로, 인공중력을 만들어 지구 환경을 재현한다. 그리고 144000명을 선발해서 2광년 떨어져 있는 미지의 행성을 향해 출발한다. 이 우주선의 추진력은 광자의 압력을 이용한 것으로 두 개의 거대한 돛이 달린 우주 범선이다..

읽고본느낌 2007.08.12

인간 폐지

C. S. 루이스의 책을 읽어 보고 싶었던 차에 동료의 책꽂이에서 ‘인간 폐지’를 발견하고 빌려 보았다. 이 책은 루이스가 1943년에 한 강연의 내용인데, 상대주의 문명을 비판하면서 교육이나 세상의 기초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절대’라는 개념을 위험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행해진 인간의 만행들이 늘 그런 이름으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절대주의이다. 특히 종교에서 ‘절대’라는 말이 붙으면 배타적이 되고 편협해진다. 진리독점주의의 폐해는 현재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금 분당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봉사 단체가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나라가 시끄럽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문제가 있는 것..

읽고본느낌 2007.07.24

콘스탄티누스의 비극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13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야기다.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콘스탄티누스 시대는 무척 중요한데, 이 시기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니케아 공의회로 지금과 같은 기독교의 틀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인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콘스탄티누스를 은인으로 여기며 12사도 다음의 성인으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콘스탄티누스 개인에 대해서는 다른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욕에 사로잡힌 잔인한 측면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렇지 못했다면 대제국의 황제 노릇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인이라는 인물들의 행태가 대부분 다 그러했지만 말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서..

읽고본느낌 2007.07.02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김혜자 님이 쓴 책제목이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책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가끔씩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말이 폭력의 충동을 억제시켜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원래 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서양의 어느 교육철학자가 쓴 책제목인데, 그걸 김혜자 님이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 방법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매가 필요하냐 아니냐는 지금도 논란거리이고 각 나라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학교만 따로 떼어놓고 볼 수도 없다. 부모에 의한 가정폭력, 그리고 사회폭력이 존재하는 한 학교에서의 교사에 의한 체벌만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렇더라도..

읽고본느낌 2007.06.22

후흑론(厚黑論)

책을 좋아하는 탓인지 나는 책선물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내가 선물을 할 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책을 주로 한다. 그만큼 책이 주고받기에 무난하기도 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좋아할 수 있는 선물이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서 책을 골라야겠지만 그 과정도 다른 물건에 비하여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책선물은 다른 것에 비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수십 년 전에 받았건만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보면 그 사람과 그때의 정황이 선명히 떠오른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가 준 책을 보관하고 있다면 가끔씩 나를 기억해낼 것이다. 내가 선물 받은 책 중에 특이한 경우가 있었다. K가 생뚱맞게도 '마키야벨리'를 선물한 것이다. K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

읽고본느낌 2007.06.18

내 안에 나무 이야기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벽 님의 사진전 '내 안에 나무 이야기'에 다녀왔다. 우선 TV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상벽이라는 사람이 사진전을 열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고 사진전의 소재가 내 관심 분야인 나무에 대한 것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다. 방송에서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만 알고 있던 분이 갑자기 사진전을 열었다고 하니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참 재주가 많은 분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2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찍는다고 한들 과연 전시회를 할 정도의 작품 수준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님은 예전에 사진을 부전공으로 하고 늘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탄탄한 바탕에서 이번과 같은 좋은 전시회가 열리지 않았나 싶다. 노력 없이 하루 아침에 ..

읽고본느낌 2007.06.14

현의 노래, 칼의 노래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를 읽었다. 미려한 문체로 소문난김훈의 글을 그동안은접하지를 못했는데, 이는 김훈에 대한 선입견도 한 원인이었다. 그분의 인터뷰를 기사나 TV로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은 솔직성과 현실주의가 왠지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해석하는 그분의 견해가 옳다고 느껴지는 일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두 소설을 읽어보면서 김훈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바탕에 깔린 사상이랄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탐미적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삶의 비극이랄까 눈물겨움 같은 것,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상이 두 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었다.낭만과 서정의 포장을..

읽고본느낌 2007.06.12

밀양

중앙시네마에서 영화 ‘밀양’을 보았다. ‘밀양’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만큼 화제작인데다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해서 관심이 컸다. 그런데 왠 일, 300석 가까운 좌석에 고작 10여명이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아무리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텅 빈 좌석이 너무 쓸쓸했다. ‘밀양’은 고통과 용서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런대로 잘 소화해 낸 작품이었다. 직접적으로는 한 인간에게 가해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무게에 가슴 아팠고, 더 나아가서는 고통을 대하는 종교와 종교인들의 태도와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전도연이 분한 신애는 극한의 고통에 몰리고 결국 신앙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그러나 유괴범을 면회 갔을 때 유괴범이 천연덕스럽게 하나님으..

읽고본느낌 2007.06.05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

서점에서 아이쇼핑을 즐깁니다. 온갖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줄지어 앉아있습니다. 우선은 책의 제목에 따라 조심스레 손길이 끌려집니다. 대개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만 어떨 때는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듯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이 쓴 '비주류 본능'이라는 산문집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 제목에 이끌리게 된 것은 나에게도 비주류 본능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과 생각을 보면 나도 아웃사이더 쪽으로 기울어지는 편입니다.나는 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비주류 본능을 느낍니다. 20대 때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콜린 윌슨이라는 저자의 이름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혹..

읽고본느낌 2007.02.22

예수와 기독교

네루는 감옥에 있으면서 딸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세계사에 대한 얘기를 써보냈다. 마치 옆에 있는 딸에게 얘기하듯 대화체로 쓴 글이 '세계사 편력'이다.멀리 있는딸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인생관을 심어주며 인도 독립을 위한 전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완역본이 나와있는데 세 권의 책으로 된적지 않은 분량이다. 세계사 편력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세워주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그 내용 중에 예수와 기독교의 형성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 있다. 열세 살 된 딸에게 쓴 글이니 쉽고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핵심과 문제점은 모두 지적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 성서(Bible)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너도 얼마간..

읽고본느낌 2007.01.08

문명 불평등의 기원

근대과학과 산업혁명은 왜 유럽에서 시작되었을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는데, 반대로 인디언들이 유럽을 정복할 수는 없었을까?같은 지구상에서 한 쪽은 문명이 번성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왜 아직도 수렵채집의 원시사회에 머물러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명쾌한해답을 말해 주는 책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다.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13000여년 간의 인류문명사이며,대륙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다르게 전개된 이유를 밝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리 속이 말끔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의 결론은 한 마디로 각 대륙 사람들이 경험한 역사가 달라진 것은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에 미치는 지리적 결정론이다. 인종의 차이, 또는 타고난 ..

읽고본느낌 2007.01.04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오눌 아침, 눈을 떴을 때 당신은 오늘 하루가 설레었나요? 오늘 밤, 눈을 감으며 당신은 괜찮은 하루였다고 느낄 것 같나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그 어디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 되나요? 선뜻, "네, 물론이죠"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이글을 선사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주변이 조금 달라져 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세계에는 63억의 사람이 있는데 이것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 시킨다면, 100중 52명은 여자고 48명은 남자 입니다. 30명은 아이들이고 70명은 어른입니다. 그 중 7명은 노인 입니다. 90명은 이성애자 이고 10명은 동성애자 입니다. 70명은 유색인종이고 30명은 백인종입니다. 61명은 아시아 사람이고 13명은 아프리카 12명은 유럽 나머지 1명은 남태평양 사람입니다. ..

읽고본느낌 2006.12.26

디어 평양

명동 CQN에서 ‘디어 평양’을 보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은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15살에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착, 해방을 맞은 후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한 열렬한 조총련 간부였다. 결혼 후 부부는 함께 열정적인 정치 활동을 편다. 자식은 넷을 두었는데 10대의 오빠 셋은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북한으로 보내지고, 남은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딸에게 서운해 하며 부녀간의 소원함으로 이어진다. 그때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고사하고 밥상에 마주앉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후에 딸은 북한을 오가며 오빠들과 그 가족들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도 화해하고 아버지의 신념과 결단을 이해하게 된다. ‘디어 평양’은 사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

읽고본느낌 2006.12.13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게토(J. T. Gatto)가 쓴 ‘바보 만들기(Dumbing Us Down)'를 읽었다. 미국의 학교교육 제도와 조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인데, 우리나라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프러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을 거쳐 수입된 학교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을 우리도 현재 심각하게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교육의 근본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책의 내용이 어떤 사람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특히 사회 주류를 이루고 있는 ‘똑똑한 바보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게토는 현재 대다수 학교의 교육과정은 ‘바보 만들기 과정’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책 내용의 몇 부분을 인용해 보았다. 학교교육을 더 많이, 더 잘 받은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

읽고본느낌 2006.10.24

행복한 이기주의자

이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행복’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제 얼마큼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먹고살만해지니까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도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며칠 전에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욕심 많은 사람들의 물질 추구를 통해 느끼는 만족도 행복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동료들은 그것도 행복이라 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계속 갈증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심적 상태는 행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행복이란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깨달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읽었다.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책 중의 하나로 내용도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

읽고본느낌 2006.10.23

쉬운 하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는 ‘메트로갤러리’라는 전시장이 있어 오가며 공짜 구경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방된 전시장이다보니 대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유명 전시회에서 느낄 수 없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이번에는 한국민족서예인협회에서 ‘먹빛 통해 내 마음터 찾아가는 체험전’이 열렸다. 장애인들이 서예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장애시설을 찾아가서 붓글씨를 체험하게 하고, 처음 붓을 잡아본 아이들의 삐뚤삐뚤한 솜씨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설픈 그림과 글씨들이 왠지 미소를 짓게 하고 감동을 준다. 도리어 나에게는 추사의 글씨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쉬운 하루’라는 이 글씨에 시선이 끌렸다. 보통 ‘보람찬 하루’ ‘좋은 하루’라는 진부한 말들이 많지만, ..

읽고본느낌 2006.10.22

마시멜로 이야기

옆의 동료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권한다. 마시멜로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하면서.... 목차를 살펴보니 성공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눈에 띄어 별로 탐탁치 않았으나 그래도 삶의 작은 지혜나마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 보았으나 많이 실망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세속적 성공 지향의 처세술에 관한 그저 그런 책에 불과하다.어찌 보면 이 시대에 통용되는 가치관과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고 베스트 셀러가 되는가 보다. 그러나 삶에대한 진지한 고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책의 짜임도 사장이운전 기사에게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어드바이스를 하는 내용이다. 책의 원어 제목이 'Don't Eat the Marshmallow..

읽고본느낌 2006.10.17

정의를 위한 주님의 기도

자선 행위가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라면 사회 정의는 그 구조를 변화시켜 지나치게 빵을 많이 갖는 사람도, 빵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연히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자선 행위라면 구체적으로 인종 차별을 다루는 것이 사회 정의이다. 전쟁의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 자선 행위라면 전쟁을 유발하는 궁극적 요인을 지닌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사회 정의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선이라면 가난한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정의다. 제도적 이해가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좋은 개인으로서 살 수 있다(교회에 잘 나가고 기도하며,..

읽고본느낌 2006.09.05

루오

100여 km를 달려 대전까지 간 것은 루오(G. Rouault)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조르주 루오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루오는 예수를 비롯한 종교화와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미제레레’ 연작 등 종교성 짙은 그림들과 루오가 사랑한 광대, 매춘부, 가난한 사람들의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정물화와 풍경화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루오는 가난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에서 영혼의 빛을 발견했다. 대신에 부자들과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멸시했다. 판사들, 오페라 극장의 귀빈석에 앉아있는 부르주아들의 얼굴은 탐욕스럽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채 그려져 있다. 대신에 곡마단 소녀의 얼굴은 예수의 얼굴을 닮아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

읽고본느낌 2006.08.17

촘스키와의 대화

"미국 정부가 원인 제공을 했으므로 테러의 근본적인 책임은 미국 정부에 있으며, 만약 미국 정부가 국제법 절차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이야말로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희생시키는 테러 집단이다." 이 말은 9. 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한 촘스키(N. Chomsky)의 말이다. 테러 직후 미 전역이 경악과 분노에 휩싸이고 전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이 한 목소리로 테러에 대한 성토를 하고 있을 때, 보복을 반대하며 미국의 책임을 강조한 촘스키의 메시지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와 같이 촘스키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린다. 전공은 언어학이지만 그분의 관심은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세상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집중되고 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상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

읽고본느낌 2006.07.18

아담을 기다리며

‘하버드의 수재 학생부부인 마사와 존 베크가 본의 아니게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생활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 되었다. 머리 좋고 야심적인 젊은 엘리트로서 학문적, 사회적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거의 미치광이처럼 맹렬하게 학업 경쟁에 몰두하고 있던 이 박사학위 후보자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임신 수개월 후 산과 검사 결과 뱃속의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버드의 교수, 학생,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들에게 장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신중절을 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베크 부부는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 자신 내부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읽고본느낌 2006.06.13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이 쓴 ‘신의 역사’를 읽었다. 부제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4000년간 유일신의 역사’로 되어 있듯이 세계의 대표적 유일신교인 세 종교의 신 관념의 변화를 서술한 책이다. 두 권으로 된 두꺼운 책이지만 흥미 있게 읽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종교인, 특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 꼭 한 번씩 읽어보았으면 싶은 책이다. 저자는 ‘신 자체’와 ‘신 관념’이 엄격히 구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신 관념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관념들이 상징하는 실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나도 이 점이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혼동하거나 착각함으로써 종교적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 신의 관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왔으며 어쩌면 시대적 욕구에 부응..

읽고본느낌 2006.06.06

물오르다

교보문고에 가는 길에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열리고 있는 '물오르다'라는 사진전을 스치며 보았다. 이 야외 사진전에는 물을 소재로 한 국내외 사진작가 30여 명의 작품 90 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지구의 소중한 자원인 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사진전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만나는 물은 대개 상수도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계량화된 표정 없는 물질이지만,사실 물 만큼 다양한 얼굴과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좀더 시간 여유를 갖고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다. 여러 작품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마리 폴 네그르의 '물공포증 환자들'인데, 물을 통해 물공포증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는 장면이 찍혀있다..

읽고본느낌 2006.05.09

용서의 능력

최근에 읽었던 ‘용서’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흑백 인종 갈등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 해방 운동 단체에 의해 수류탄 공격을 당한 한 백인 여성이 있었다.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무차별적인 공격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 공격으로 그녀의 많은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녀 역시 장기간 중환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생명은 구하고 퇴원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목욕시켜 주고, 옷을 입혀 주고, 음식을 먹여주어야 했다. 그녀의 몸속에는 아직도 많은 수류탄 파편이 박혀 있다. 과거사 진실 규명 위원회에 출석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건은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었어요.” “가해자를 만나고 싶군요. 용서하는 마음으로 ..

읽고본느낌 2006.04.11

마티스와 숭례문

어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야수주의 탄생 100 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전시회였는데 마티스를 비롯해서 대표적인 야수주의 작가들의 유화 작품이 100여 점 이상 전시되고 있었다. 야수파들은 자연의 색을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대신 감성에 의해 보고 싶은 대로 또는 보여주고 싶은 대로 현실과 다소 무관한 색채를 이용하는 새로운 회화세계를 열었다고 한다. 전시회에 갔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미술사적으로 야수파가 가지는 의의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전의 경향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고 독특한 것인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색채의 마술사라는데 그런 특징 또한 내 눈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아서 답답했다. 사람들..

읽고본느낌 2006.03.06

아일랜드

비디오로 영화 '아일랜드'를 보았다. 가까운 미래의 인간복제를 다룬 SF 영화지만 지금의실제 상황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소재여서 실감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황우석 사태로 민감해진 상황이라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구상에 일어난 생태적인 재앙으로 인해 일부만이 살아남은 21세기 초반,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생존자라 믿고 있는 링컨과 조던은 수백 명의 주민들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빈틈없는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몸 상태를 점검 받고, 먹는 음식과 인간관계까지 격리된 환경 속에서 사는 이들은 모두 지구에서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추첨이 되어 뽑혀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매일 같이 똑 같은 악몽에 시..

읽고본느낌 2006.02.18

생명 - 그 아름다움

어제 오후에는 중림동 가톨릭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선규 기자의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전의 타이틀은 '생명 - 그 아름다움'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을 따스한 시각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작품이란 이렇게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각 사진마다 제목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어 좋았다. 그 글에서 또한 작가의 생명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전시된 몇 작품을 여기에 옮겨본다[www. ufokim.com]. ″김형 팔뚝만한 잉어가 하늘로 뛰어올라″ 지루한 장맛비가 그친 금요일 아침 중계동에 사는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간밤에 사납게 퍼붓던 비로 인해 중랑천 물은 무서운 기세로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2시간의 기다림. 마침내 팔뚝만한 잉어가 수중보..

읽고본느낌 2006.02.03

에버렛 루에스

에버렛 루에스(Everett Ruess)는 1914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났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들어가지만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환멸만을 느낍니다. ‘영원한 자유의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싶었던 내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철창이 없는 감옥, 나는 이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주위엔 온통 길들여진 사람들뿐이다.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뻔뻔스런 얼굴이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싫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는 문명 세계 대신에 자연의 품을 택합니다. 자연 속에서의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던 그는 결국 19..

읽고본느낌 2006.01.08

슬로 라이프(4)

- 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닮은 집. 슬로 하우스(slow house) 개념으로 요사이 주목받는 것이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는데.... 잡(雜)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잡초, 잡목림, 잡곡, 잡종....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1차산업에서 재인식되어야 할 말들이다. 특히 미래의 음식문화에서는 잡곡을 빼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 먹어야 한다면 줄이기라도 하자. 육식 예찬의 이데올로기에서 ..

읽고본느낌 2005.12.28

슬로 라이프(3)

- 인간 중심의 사고야말로 폭력적이다. 이제까지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자연을 수단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공리주의에 발목 잡혀 있었다. 우리들은 인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인 ‘생명의 민주주의’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비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은 자신의..

읽고본느낌 200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