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담을 기다리며

샌. 2006. 6. 13. 11:13

‘하버드의 수재 학생부부인 마사와 존 베크가 본의 아니게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생활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 되었다. 머리 좋고 야심적인 젊은 엘리트로서 학문적, 사회적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거의 미치광이처럼 맹렬하게 학업 경쟁에 몰두하고 있던 이 박사학위 후보자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임신 수개월 후 산과 검사 결과 뱃속의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버드의 교수, 학생,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들에게 장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신중절을 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베크 부부는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 자신 내부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임신 중의 온갖 고통과 절망, 불안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뱃속에 갖고 있는 동안 이 부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보호 밑에서 평화와 사랑을 누린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아담이 태어날 날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베크 부부는 그들 자신이 이 세상에 전혀 새로이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 소중하고, 무엇이 하찮은 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근원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담이라는 특별한 아기의 잉태와 탄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새삼스럽게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우리들의 안과 밖에 있는 작은 것들 속에 아름다움과 진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롭고 풍부한 내면적 행복의 세계를 향해 열려지게 되었다.’


이상은 마사 베크의 회고록인 ‘아담을 기다리며(Expecting Adam)’의 줄거리다. ‘아담’은 저자에게 기적을 체험케 해 준 다운증후군 아이의 이름이다.

책의 부제가 ‘태어남과 다시 태어남, 그리고 일상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A True Story of Birth, Rebirth, and Everyday Magic)’인데, 젊은 부부가 아담이라는 다운증후군 아기를 임신하고 기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신비를 깨닫고 성숙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종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책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우선 하버드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소위 지적 엘리트들의 자기중심적인 삶과 위선, 그리고 학문이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메마른 환경을 잘 보여준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의 모습에 사실 다름 아니다. 하버드는 살벌한 경쟁 사회의 한 상징일 뿐이다.

똑똑한 바보들의 잘난 체 하고 무엇이건 아는 체 하는 슬픈 풍경은 ‘스머프 풀’이라는 에피소드에 잘 나타나 있다.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친구의 실험실에 들렀다가 강의 시간에 늦게 되어 변명하느라 ‘스머프 풀’을 보느라고 늦었다고 하니까 담당 교수와 학생들이 그것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가장을 한다. 그래서 스머프는 엉뚱하게 박사 학위를 받은 훌륭한 학자로 둔갑을 하게 된다. 이것은 차라리 슬픈 희극이다.


저자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교통사고를 겪고 아담의 임신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그런 변화의 주역은 ‘보이지 않는 존재’ ‘인형 조종자’ 등으로 묘사된 신비한 존재이다. 화재, 임신으로 인한 탈진 등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만다 이들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리고 낙태를 하지 말고 아담을 낳으라고 이들 부부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 하나 신기한 현상은 ‘보이기’라 부르는 것으로 이들 부부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이 보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인데 저자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때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로 둘러싸여 있다는 반증이 된다. 물론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 부부는 하버드로 대표되는 세상에서 아담으로 대표되는 세상으로 넘어온다. 그것은 극적인 세계관의 반전이다.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으로 보던 눈을 버리고 자신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은 ‘재탄생(Rebirth)'이라고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는 다운증후군 아이인 아담이 이런 선물을 준 것이다. 이들 부부에게 아담은 천사에 다름 아니다.

기존 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이란 것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 것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신을 믿고 천국 약속을 받는 것이 거듭남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겉모양으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하던 눈이 신비의 세계로 옮겨감을 뜻한다. 즉 무지의 세계에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를 지배하던 돈, 권력, 이기심들에서 벗어나고 해방되는 것이다. 고통을 주는 다운증후군 아이가 행복과 평화를 주는 천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 출신이라는 보장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버리고 지금은 직업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가고 뛰어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을 버리고, 삶의 기쁨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것은 아담이 공짜로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녀가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받은 모든 교육과 훈련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에서가 아니라 단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배웠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인생이란 대체로 도박이지만 예기치 않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과정이라고, 그래서 안전보다는 차라리 풍요로운 경험을 중심으로 생활을 설계하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천사들이, 혹은 어떤 형태이든 선(善)이 우리 삶에서 물처럼 작용한다고 믿는다. 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그것은 흘러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열려있어서 스펀지처럼 선을 흡수하고 손대는 곳마다 그 흔적을 남겨놓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도 열려있는 순간, 연민의 순간이 있으면, 선이 쏟아져 들어가 그 공간을 채운다.

또 저자는 우리들 정상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보물들을 내다버리고 쓰레기들을 소중히 여기느라 인생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똑똑한 체,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흔들림이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려고 애쓰며 요란을 떨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실은 겁먹고 어리둥절해 있다. 이 그림자 세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 근시안과 편협함 때문에 그녀는 마음 아파한다.


우리에게 ‘아담’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처럼 장애인 자녀일 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불행일 수도 있다. 그것은 대개 고통의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온다. 마치 베크 부부가 아담의 잉태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번민과 갈등을 겪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담이 찾아온다는 것은 깨달음과 변화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얘기한다.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아담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경험을 저자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자문하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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