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신의 역사

샌. 2006. 6. 6. 18:35

카렌 암스트롱이 쓴 ‘신의 역사’를 읽었다. 부제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4000년간 유일신의 역사’로 되어 있듯이 세계의 대표적 유일신교인 세 종교의 신 관념의 변화를 서술한 책이다. 두 권으로 된 두꺼운 책이지만 흥미 있게 읽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종교인, 특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 꼭 한 번씩 읽어보았으면 싶은 책이다.


저자는 ‘신 자체’와 ‘신 관념’이 엄격히 구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신 관념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관념들이 상징하는 실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나도 이 점이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혼동하거나 착각함으로써 종교적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 신의 관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왔으며 어쩌면 시대적 욕구에 부응해서 변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초기 이스라엘 부족신에 불과했을 때의 신은 전투적이고 호전적이었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 뒤로 사회 발전 단계에 따라 신의 관념은 계속 변해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떠나서 그저 신을 믿는다는 고백은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수녀 생활을 하다가 환속한 사람답게 비교적 공정하게 신 개념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알 수 없고 표현도 불가능한 절대존재, 또는 영적 차원의 세계를 긍정하면서 그동안 인간 삶에서 신이 차지했던 위상을 인정한다. 이 책의 서술에는 인간을 영적인 존재, 종교적 존재로 보는 바탕이 깔려있다. 그러나 신 자체와 신의 관념을 혼돈하는, 그래서 신의 관념을 신 자체로 착각하는 신앙 행태는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확실히 이 책은 기독교인이 빠지기 쉬운 종교적 편협성과 배타성, 그리고 생각의 유아성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신 개념은 이미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신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구원과 내세를 강조하고 신자들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기복적인 신이다. 이 신은 인격적 최고 전재로 지상의 왕처럼 하늘에 계신다. 이런 신 개념은 인간의 세속적 염원이 신에게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다수 기독교인이 아직 이 수준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교회의 가르침 또한 사랑의 실천 보다는 예배 의식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종교 역사를 돌아볼 때 사랑 실천의 신앙 보다는 대다수 신앙인들이 종교적 신앙의 윤리적 측면을 무시해 왔다고 말한다. 자기 부정과 비움으로 이웃과 고통을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안락을 얻는데 종교를 이용한다. 신은 세속적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저자는 21 세기 이후에도 살아남을 신 관념으로 신비주의적 신앙을 들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 실체로서의 신 존재를 거부하고, 인간 내면에서 신비적으로 경험되는 주관적 신 체험에 근거를 두는 신앙이다.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과 다양한 예술적 상징성을 통해 신은 표현된다. 이런 신앙은 서방 기독교의 주류가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도 감상주의로 흐르거나 자의적 신 개념이 투영될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지적 예민성이 요구된다. 이런 신앙은 ‘신’이라는 말이 그 말 자체를 초월하는 어떤 절대적 실체에 대한 상징임을 확실히 깨달음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신비주의적 불가지론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런 관념은 절대적 신의 신비를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 교리화하는 우를 막아준다.


전통적 신 개념이 오늘날 세속화된 세상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내 눈에도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과 불안은 아직 새로운 신 개념이 정착되지 못한 과도기의 현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듯한 근본주의 신앙 같은 건전하지 못한 믿음 탓도 크다고 본다. 우리는 곧 새로운 신앙 형태의 등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 내면의 심연에 관심을 갖는 ‘불교적 기독교’ 또는 온 생명과 전 우주를 포용하는 ‘우주적 기독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내 경우 이 책을 통해 종교적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신 자체’와 ‘신 개념’을 구별해서 볼 수 있게 된 것만도 큰 배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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