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6

거미를 관찰하다

지난 초가을 안방 베란다 유리창 밖에 거미가 자리를 잡았다. 짐작컨대 무당거미였고 유리창과 거의 맞붙어서 평행하게 거미줄을 쳤다. 덕분에 무당거미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 9/21 얘는 아무래도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다. 한 달이 되도록 거미줄에 걸려드는 먹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거미는 미동도 없이 기다린다. ▽ 10/17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탈피를 하고 나니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새로 나타났다. 원래 있었던 거미는 암컷이고, 작은놈은 수컷이다. 짝짓기를 노리는 것이다. 수컷 거미의 짝짓기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잘못하다가는 덩치가 큰 암컷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암컷은 굶주린 상태다. 수컷은 암컷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뒷걸음친다. ▽ 10/18 접근과 후퇴를..

사진속일상 2022.11.16

거미

노인 혼자 사는 집에는 거미줄이 많다. 사랑마루 위에도 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매미 한 마리가 제물이 되었다. 주로 잠자리가 잘 걸렸는데 거미로서는 횡재를 한 것이다. 거미줄을 뿜으며 포획물을 꽁꽁 묶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다가 아뿔싸, 포획물을 놓쳐 버렸다. 줄이 끊어지고 매미는 땅에 떨어졌다. 거미는 한동안 멍해 있다. 왜 그런 실수를, 지금은 뼈아픈(?) 자책을 하는지 모른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인내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저 자세로 꼼짝을 하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쳐다봐도 여전하다. 끝까지 기다린다. 미세한 떨림의 순간을....

사진속일상 2013.08.20

집 / 맹문재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 집 / 맹문재 한국인의 유별난 가족주의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진단할때 늘 감초처럼 끼어든다.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 정서적 교류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밖에 모르는 가족 이기주의는 ..

시읽는기쁨 2007.08.03

거미줄 / 손택수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 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 거미줄 / 손택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어디 부모 자식 사이에만 있겠는가. 모든 존재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끈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생각하고 행위하는 모든 것이 전 우주의 존재들에게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하나로 이어진 존재들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우울한 건 멀리 있는 당신이 그 무언가로 ..

시읽는기쁨 2007.03.23

[펌] 거미의 일기장

내가 사는 곳은 여섯 평가량 되는 방이다. 이곳에는 20여 마리의 거미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개미들의 나라가 3개국이 있다. 남쪽 모서리에 있는 개미 제국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며, 북쪽 부엌 쪽으로 통하는 벽면에 있는 개미 제국은 최근에 건국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가량 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거미들과는 왕래를 하지 않는다. 발로 바닥을 딛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모기와 나방들이 수도 없이 날아 들어왔고, 요즘엔 파리들이 주로 날아다닌다. 우리는 서로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방문이 열리고, 암컷 사람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한 우리 거미들..

참살이의꿈 2005.10.02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시읽는기쁨 200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