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13

염세 철학자의 유쾌한 삶

쇼펜하우어를 염세 철학자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세상의 근본을 고통이라 봤지만 반면에 지혜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것은 동양 불교의 선(禪)이나 도가 사상과 닮은 데가 있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를 통해 그가 생을 부정하는 철학자가 아님을 확인했었다. 제목이 도발적인 은 그의 저작 중에서 유쾌하기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뽑아서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통해 지혜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고독해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통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고독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고슴도치 비유는 유명하다. "고슴도치 무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 않도록 서로 온기를 나누려고..

읽고본느낌 2023.02.16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임사 체험 후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인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는 인도 여성으로 어린 시절부터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며 성장했다. 결혼한 후에 임파선암이 발견되어 4년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중 마지막에 신체의 기능이 멈추었고 임사 체험 상태에 들어갔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고 병도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감각에 눈을 떠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각한다는 임사 체험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띄고 있다. 아니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신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안과 행복에 잠..

읽고본느낌 2022.10.06

토굴가 / 나옹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무명장야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제불회상(靈蹴山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든 소림굴조사..

시읽는기쁨 2022.01.29

2022년 첫 뒷산

새해에 든 지 벌써 반 달이나 지났다고 푸념을 하는 동기에게 나는 속으로 한 마디 한다. 넌 참 재미나게 사는가 보다. 나에게는 새해의 시작이 한참 전의 과거로 멀게 느껴진다. "아직 반 달밖에 안 지났다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반 달이나'와 '반 달밖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생사에는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올 들어 처음 뒷산을 오르면서 탐, 진, 치(貪, 嗔, 痴)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나이를 더할수록 또렷해지는 어두운 그늘이면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산길은 꼬불꼬불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온다. 꼭대기라고 여긴 곳이 눈을 들면 작은 봉우리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끝은 아니다. "나는 과..

사진속일상 2022.01.16

다읽(13) - 의식 혁명

20여 년 전에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인간의 개인과 집단 의식의 중요성을 과학적 근거를 들며 갈파한다. 이 책에서 특이한 사항이 운동역학적 근육 테스트다. 수평으로 내민 팔에 힘을 가할 때 근육이 저항하는 정도로 인간계의 모든 현상에 대한 진위 구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이 책의 원제는 다. 'Force'는 지각할 수 있는 외적인 힘이고, 'Power'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력이다. 인간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는 엄청날 정도로 강력한 끌개의 에너지 패턴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의..

읽고본느낌 2021.11.02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1980년대 후반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쇼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내 책장에도 그때 사서 읽었던 오쇼 책이 10여 권 꽂혀 있다. 기성 종교나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던 사람들이 오쇼에 심취했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화려한 필체에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6부작 다큐멘터리다. 1981년에 오쇼는 인도 아쉬람을 정리하고 미국 오리건주 앤털로프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오쇼의 비서였던 쉴라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공동체 실험의 시작부터, 주민과의 갈등으로 실패해서 1985년에 철수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쉴라를 비롯해서 그때의 운동에 함..

읽고본느낌 2021.07.15

다읽(3) - 티벳 사자의 서

책 표지를 넘기니 내지에 이런 글을 적어 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은 마음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나니.... 1996년 2월, 삶과 죽음의 신비! 1999년 12월, 지금 여기 나에게 주는 메시지 2002년 10월, 진리를 향한 길 읽었을 때마다 짧은 감상을 적은 것이다. 책에는 거의 메모를 남기지 않는데 는 예외였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개안을 한 느낌이랄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꾼 책이다. 역설적으로 를 만남으로써 가톨릭 신앙이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라는 뜻이다. 인간의 죽음과 사후세계, 그리고 환생을 다루고 있다..

읽고본느낌 2020.08.27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

6세기에 인도에서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선(禪)의 시조로 꼽힌다. 달마에서 전해진 선의 불꽃은 육조 혜능에 이르러 활짝 타오르게 된다. 달마대사는 온종일 침묵을 지키며 벽만 바라보고 참선을 했다고 해서 면벽바라문(面璧婆羅門)이라 불리웠다. 그만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정진 수도했다는 뜻이리라. 달마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글이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다. 도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며, '지성에 의한 길'[理]과 '행위에 의한 길'[行]로 구분한다. 지성에 의한 길은 경전 공부를 통한 깨달음이고, 행위에 의한 길은 삶의 실천을 통한 깨달음이다. 마치 돈오와 점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뒷날 선사들은 도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이 글에서는 선의 정신이 보이지는..

참살이의꿈 2020.08.26

그런 일이 있은 뒤

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 三年不出 爲其妻찬 食豕如食人 於事無與親 雕琢復朴 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是終 "그런 일이 있은 뒤, 열자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 참된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3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으며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하며, 세상 일에 좋고 싫음이 없어졌다. 허식을 깎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무심히 독립해 있으면서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거기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이와 같이 하여 일생을 마쳤다." '응제왕' 편에 나오는 구절로, 처음 를 읽었을 때 매우 감명을 받은 부분이다. 고상한 철학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삶과 직결되는 내용이 좋았다. 열자에게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일..

참살이의꿈 2017.01.21

일장춘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어렸을 때 집에 유성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들고 나는 태엽을 돌리며 유성기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도 그중의 하나다. 이제는 그 하얗던 할머니들도, 유성기도, 마당의 감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 내 입에서도 무심결에 이 노래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면 옛날의 그 호롱불이 희미하던 방 풍경이 떠오른다. 본 노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던, 북한 사람의 음성처럼 간드러지던 유성기 소리도 들린다. 인생 일장춘몽인데, 애면글면 헛된 마음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나 싶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져 주자..

참살이의꿈 2013.06.11

각비(覺非)

각비(覺非)란 직역하면 '그릇됨을 깨닫다'는 뜻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온다. 각비(覺非)는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覺今是而昨非]'에서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딴 것이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추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基未遠 覺今是而昨非....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 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는가 지난날은 뉘우쳐봐야 바뀔 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치는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진 것은 아니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 도연명은 호구지책으로 나이 마흔에 지방의 말단 관직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관리 노릇은 천성에 맞지..

참살이의꿈 2012.11.29

장자[219]

막막하여 형체가 없고 변화무상하니 죽음도 삶도 더불어 하고 천지의 아우름과 더불어 하고 신명의 운행과 더불어 한다. 망망한데 어디로 갈 것이며 순간인데 어디까지 갈까? 만물이 모두 그물인데 근원으로 돌아감만 못하리라! 笏漠無形變化無常 死與生與 天地竝與 神明往與 芒乎何之 忽乎何適 萬物畢羅 莫足以歸 - 天下 3 우주 만물의 근원을 도(道)라고 할 때, '홀막무형변화무상(笏漠無形變化無常)'은 장자학파에서 생각하는 도의 속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 사상을 관통하는 중심 단어가 '변화무상(變化無常)'이 아닌가 싶다. 서양에서는 영원불변하는 실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탐색하는 작업이 철학의 기본 흐름이었다. 초기에 나타나는 원소설에서부터 이데아론에 이르기까지 불변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삶의나침반 2012.09.20

깨우치다 / 이성부

정상에서 찍은 사진 들여다볼 때마다 이 산에 오르면서 힘들었던 일 사진 밖에서도 찍혀 나는 흐뭇해진다 꽃미남처럼 사진 속의 나는 추워 떨면서 당당한 듯 서있는데 먼 데 산들도 하얗게 웅크리고들 있는데 시방 나는 왜 이리 게으르게 거들먹거리기만 하는가 눈보라 두눈 때려 앞을 분간할 수 없고 세찬 바람에 자꾸 내 몸이 밀리는데 한걸음 두걸음 발 떼기가 어려워 잠시 주저앉았지 내 젊은 한시절도 그런 바람에 떠밀린 적 있었지 밤새도록 노여움에 몸을 뒤치다가 책상다리 붙들고 어둠 건너쪽 다른 세상만 노려보다가 저만치 달아나는 행복 한 줌 붙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지 능선 반대편으로 내려서서 나도 몸을 피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바람 잔 딴 세상 편안함에 나를 맡겨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가야할 길이 많은데 마음만 바쁘..

시읽는기쁨 200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