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봉화 8

북지리 소나무

왕버들과 함께 북지리의 자랑인 소나무다. 수령이 350년 된 나무로 우람한 체형이 당당하다. 그러나 마을 쪽으로 뻗은 가지가 여럿 잘려나가서 균형이 안 맞는다. 마을에 이런 소나무가 있으면 이 터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누가 심었고, 어떤 자리였는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4.12.06

계서당 소나무

봉화 물야에 있는 계서당(溪西堂)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인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선생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지어졌다. 선생은 인조 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치면서 4차례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진주목사 등 5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근검 청빈한 생활로 이름이 높았던 분이다. 성이성 선생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라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남원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10대 중반에는 남원에서 살기도 했다. 계서당 뒤에 옆으로 기울어진 소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00년이고 성이성 선생이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그만큼 연륜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쓰러질 듯 계서당 쪽으로 누워서 지지대에 의지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천년의나무 2014.11.30

서벽리 느티나무

독립 의병 활동과 관계된 느티나무다. 1908년(순종 2년) 5월 18일, 변학기 외 300 의병은 이곳 30여 그루 느티나무를 은신처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에게 화승총 공격을 가하여 40여 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는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뒤에 일본 헌병대는 자신들이 참패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지우기 위해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으나, 성황당에 붙어 있던 한 그루는 신목이라 하여 반쪽만 끊어가고 나머지는 남겨둔 게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서벽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7

석현리 소나무

수령이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수형이 무척 단정한 나무다.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3m다. 춘양면 석현리 마을을 굽어보는 산자락에 있다. 개인 소유지만 오래전부터 마을 당나무로 지정되어 주민들이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 위치가 마을 전체에 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나무 둘레에는 벤치가 여럿 놓여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도 이용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6

한수정 느티나무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한수정(寒水亭)이 있다.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권벌(1478~1548)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으로 '한수정'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운곡천과 이웃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수정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되었다. 줄기 아랫부분만 남아 있어 기형적인 모양을 한 괴목이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 묘하게 흙담이 나무를 지나가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천년의나무 2014.11.25

청량정사 고사목

봉화 청량산에 있는 청량정사(淸凉精舍)는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들을 가르쳤던 건물이다. 퇴계 역시 13살 되던 해(1513)에 이곳에서 글을 배웠다. 원이름은 오산당(吾山堂)이었다고 한다. '나의 산'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청량산은 퇴계 가문에 속하는 산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청량산 일대는 퇴계와 인연이 깊다. 청량정사 바로 옆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있어 그 옆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여느 고사목과 달리 몸 전체가 검게 그을려 있어 화마의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불 탄 잔해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감탄하게 되는데, 살아있었을 때 모습을 상상해보면 아래에 있는 청량정사와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나무에 불이 난 것이 6.25 때라고 하니까 벌써 50년..

천년의나무 2007.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