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암 향나무 석수암(石水庵)은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작은 사찰인데 경내에 오래 된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의 일종으로 옆으로 비스듬히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지를 받쳐주는 쇠기둥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건립할 때 심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전설은 전설로 알아들어야 할 것 같다. 전설대로라면 나무의 수령은1,400년이 되어야 한다. 그에는 못 미치더라도 상당한 연륜을 보여주는 석수암 향나무다. 천년의나무 2020.09.27
웅부공원 느티나무 안동시 동부동에 있는 웅부공원(雄府公園)은 옛날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와 안동군청이 있던 자리다. 공원 안에 안동 사람들이 '부신목(府神木)'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있다. 부신목은 '부(府)를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나무'라는 뜻이다. 안동부사가 부임해 오면 먼저 이 나무에 신고했고, 또 제관으로 매년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부의 안녕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한다. 현재는 시장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나무는 가지가 여럿 잘리고 상한 모습이어서 이름에 어울리는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느티나무의 높이는 10m, 줄기 둘레는 1.5m, 수령은 약 800년으로 추정한다. 천년의나무 2020.09.27
하회마을 느티나무(2) 하회마을에 들를 때면 이 나무는 꼭 보고 간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하회마을의 중심 나무다. 이곳에 삼신당(三神堂)이 있는데 마을에 있는 세 사당 중 하나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여기서 제를 올린다. 그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우리 민속에서 삼신할미는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조상신이다.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께 비는 모습을 어릴 때 보았다. 하회마을의 삼신당도 그런 기능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외지인이 들락거리는 지금은 나무 둘레에 온갖 소원을 적은 흰 종이가 빼곡하다. 삼심할미가 계신다면 아르바이트생이라도 고용해서 저 민원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거대한 나무의 밑동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년의나무 2013.05.04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나무다. 원래 이 나무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1990년 당시에 나무를 살리기 위해 23억 원이라는 거금을 쓰며 3년 간의 공사 끝에 15m 위로 나무를 들어 올리고 인공산을 쌓았다. 생명토 공법, H Beam 공법, 요철 공법 등의 신기술을 써서 나무를 살리는 대공사를 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우리의 건축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게 나무 앞에 서면 더욱 뿌듯하게 느껴진다. 나무는 키가 37m, 줄기 둘레가 14.5m나 되는 거목이다. 국내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굵은 나무다. 나이는 700살 가량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순창(.. 천년의나무 2011.11.22
부용대 소나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은 옥연정사(玉淵精舍)를 짓고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기록이 선생이 쓴 '소나무를 심고[種松]'이라는 시로 남아 있다. 스무아흐렛날 자제들과 재승(齋僧) 몇 사람을 시켜서 능파대 서쪽에 소나무 삼사십 그루를 심었다. 내 일찍이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고'란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나이 사십이 되어 몇 그루 어린나무를 심는가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물다는데 언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볼 것인가' 하였다. 올해 내 나이 예순셋인데 새삼 나무를 심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떠오르는 감상을 재미삼아 몇 구절 시로서 옮겨본다. 북쪽 산 아래 흙을 파서 서쪽 바위 모퉁이에 소나무 심었네 흙은 삼태기에 차지 않고 나무 크기 한 자가 되지.. 천년의나무 2011.11.18
옥연정사 소나무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께서 후년에 거처하신 가옥이다.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 자락에 있다. 살림을 사는 집이 아닌 서애 선생만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이었다. 옥연정사는 1576년에 집짓기를 시작해서 10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집 지을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홍(誕弘)이라는 스님이 도와주어서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징비록을 저술했다. 선생이 쓴 '옥연서당기(玉淵書堂記)'에 보면 집을 지은 당시의 선생의 소회가 드러나 있다. '사슴, 고라니 같은 내 천성은 산야에 삶이 알맞지 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 중년에 망령되게도 벼슬길에 나아가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 천년의나무 2011.11.18
영산암 반송 안동 봉정사에는 영산암(靈山庵)이라는 보물 같은 암자가 있다. 영산암 마당에 있는 반송을 보러 찾아갔지만 나무보다는 영산암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다. 안내문에 보면 영산암은 1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니 100년이 좀 넘었다. 그래선지 다른 암자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6개의 건물이 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폐쇄적 구조다. 마치 인사동의 어느 고택 안에 들어선 느낌도 든다. 고풍스러우면서 편안하다. 전체적으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통일성과 조화가 느껴진다. 조경 전문가가 특별히 설계해서 지은 것 같다. 특히 3단의 계단식 지형에 맞게 건물이 참하게 들어앉았다. 좁은 마당이 우주를 품은 것처럼 넓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이곳에서 실감했다. 반송은 마당.. 천년의나무 2011.06.08
봉정사 소나무 안동 봉정사(鳳停寺)는 천년고찰의 분위기가 서린 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예쁜 영산암도 있다. 천등산 아래 자리잡은 절은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친절한 해설사는 절 뒤편의 소나무들이 법당 쪽으로 가지를 뻗지 않고 줄기도 반대편으로 굽은 연유를 흥미롭게 설명해 주었다. 절에 들어설 때 제일 먼저 맞아주는 나무가 있다. 깊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처럼 기울어져서 자라는 소나무다. 줄기도 위쪽에서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진 모양이 마치 두 손 모아 합장하는 것 같다.절 주위에 보기 좋은 소나무들이 많지만 유독 이 나무가 눈길을 끈다. 수령은 200년이 채 안돼 보이지만 지지대에 의지한 채 절을 찾는 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1.06.03
경류정 뚝향나무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진성이씨(眞城李氏) 종택이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리 때에 공을 세운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가 맨 처음 세웠다고 한다. 종택 건물들 중에는 퇴계 이황이 이름을 짓고 쓴 경류정(慶流亭)이 유명한데 그 앞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뚝향나무가 있다. 퇴계 선생이 바로 진성이씨 문중이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의 한 종류로 가지가 옆으로 퍼져 자란다. 옛날 고향 마을 우물가에도 이 나무가 있었다. 아마 물기 많은 둑에 많이 심었다고 ‘뚝’향나무가 아닌가 싶다. 경류정 뚝향나무는 나무의 유래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 세종 때 이정(李楨)이 평안도 정주판관(定州判官)으로 있을 때 약산산성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경류정 앞에 심었다.. 천년의나무 2011.05.25
예안향교 은행나무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있는 예안향교를 찾아간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담장 너머로 바라본 경내에는 안내판만 있을 뿐 무궁화는 보이지 않았다. 기력이 쇠했다더니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대신 향교 앞에 있는 은행나무와 만났다. 향교와 은행나무는 찰떡 궁합처럼 잘 어울린다. 대부분의 향교에는 이렇게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예안향교가 세종 2년(1420)에 세워졌다는데 이 은행나무의 수령도 그 정도로 추정한다. 키는 17 m,줄기 둘레는 4 m인데 두 줄기 중 한쪽은 많이 상했다. 향교 앞에는 폐가 한 채가 있어 찾는 이 없는 향교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은행나무도 아마 외로움에 힘겨워하는지 모른다. 천년의나무 2011.05.21
사신리 느티나무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로 알려져 있다. 키가 30 m에 이르고, 줄기 둘레도 10 m에 달하는 거인이다. 600 살의 나이를 자랑하며 마을 입구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정도의 나무라면 마을 사람들이 영험하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이 나무 아래서 지낸다. 안내문에 보면 일제 시대 때큰 줄기 하나가 잘렸다는데 나무의 균형이 흐트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가까이 갈수록 거목으로서의 위엄이 느껴진다. 도로에있는 표지판에는 '느티나무'를 우리 발음 그대로 'Neutinamu'로 적은 게 재미있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니 느티나무의 영어 이름은 Zelkova, 또는Elm-like tree다. 이왕 영어로.. 천년의나무 2011.05.18
가곡리 회화나무 안동시 풍산면 가곡리는 남천고택 등 옛집들이 여럿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마을의 연륜을 대변해준다. 이 나무는 수령은 300 년 가량 되었고, 높이는 11 m 정도다. 이 나무의 특이한 점은 보형재로 채운 줄기에 용이 승천하는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여러 나무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총천연색 그림을 그린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별로 좋은 아이디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무는 자연 상태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것은 처음에는 눈길을 끌지만 곧 싫증이 나고 어색해진다. 나무 옆에는 이 마을 출신인 항일지사 권오설(權五卨) 선생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은 사회주의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썼고, 1926년 6. 10 만세운동의 주동.. 천년의나무 2010.02.08
하회마을 소나무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나무들 중 하나다. 옛 초등학교 자리의 넓은 빈 터에 있어 강변길을 걷다 보면 쉽게 눈에 띈다. 모양새가 아담하며 균형이 잘 잡혀 있다.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수령은 약 400 년 정도 되었다. 키는 6 m이고, 줄기 둘레는 1.5 m이다. 가까이서 보면 줄기가 살아 움직이듯 용틀임을 하는 모습이다.이런 소나무를 보통 용송(龍松)이라고 부른다.나무가 더 크면 두려운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나무는 아직 그렇지는 않다. 윗 줄기를 보면 마치 근육 자랑을 하는 청년의 팔뚝처럼느껴진다. 떠나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예쁜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0.02.03
하회마을 느티나무 하회마을에 있는 많은 나무들 중에서 이 느티나무가 가장 오래 되었으면서 또한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다. 풍산 류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는 600살 쯤 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이 나무는 마을의 혈(穴)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는데,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올린다고 한다. 이 나무는 삼신당(三神堂) 신목(神木)으로 불린다. 삼신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우리 전통의 신앙 대상이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네들의 애달픈 비손을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이 지켜보았을 것인가. 지금도 나무 둘레에는 관광객의 소원을 적은 흰 종이가 빼곡히 매달려 있다. 그래선지 나무의 생김새도 삼신할매 마냥 푸근하고 넉넉하다. 밑에서부터 왕관 모양.. 천년의나무 2010.01.28
만송정 솔숲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쪽 강변을 따라있는 소나무숲이 만송정 솔숲이다. 조선 선조 때 겸암(謙菴) 류운용(柳雲龍) 선생이 부용대의 기를 누르고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만송정(萬松亭)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솔숲에 정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숲은 400 년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는 소나무들은수령이 백년 내외가 된다. 따라서 후대에 다시 조성한 소나무일 것이다. 하회16경(河回十六景) 중에 송림제설(松林霽雪)이 있는데 이는 눈 덮인 만송정의 솔숲을 가리키는 말이다.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이 솔숲은 하회마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솔숲이 없다면 마을이 얼마나 썰렁할지는 부용대에 올라 바라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더.. 천년의나무 201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