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여주 10

이포리 느티나무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이포리(梨浦里)를 이름 그대로 풀면 '배나무가 많은 포구 마을'이 된다. 실제로 마을 가까이 남한강이 있으니 나루터가 있었을 법하다. 이 나무는 금사농협 옆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이 건국할 때 새 도읍지를 알아보던 무학대사가 여기를 지나다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안내판의 수령은 500년으로 되어 있다. 고목을 두고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허리가 아픈지 나무는 구부정하게 서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2.8m다.

천년의나무 2021.08.25

우만리 느티나무

여주를 지나가는 여강의 우만리 나루터에 있는 느티나무다. 우만리 나루터는 우만리와 강 건너 강천면을 잇는 곳이었다. 우만리 사람들은 땔나무를 하러 갈 때, 강천면 사람들은 여주장이나 장호원장을 보러 갈 때 이 나루터를 이용했다. 우마차를 싣고 건너는 큰 나룻배도 있었다고 한다. 우만리 나루터는 50년 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 느티나무는 300년간 나루터에서 뭇 사람들의 애환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배를 기다리며 느티나무 아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고, 느티나무는 귀동냥으로 들은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이제는 나루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적막한 땅이 되어 버렸다. 여강을 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가끔 나무 밑을 지나갈 뿐이다,

천년의나무 2020.06.09

주어리 느티나무

여주시 산북면 앵자봉 남쪽 산자락에 주어사지(走魚寺址)가 있다. 아랫동네 이름도 주어리다. 이름이 특이한데 이는 절을 창건한 설화와 관계가 있다. 한 스님이 절터를 찾던 중 잉어를 따라가 보라는 꿈을 꾸고 실제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기를 따라가다가 좋은 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어사는 17세기 초에 세워진 절인데 천주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앵자봉 너머의 천진암과 이곳 주어사가 초창기 천주교 입문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그래서 두 사찰 모두 폐사(廢寺)되는 운명을 맞았다. 주어사는 1776년 즈음에 권철신을 중심으로 강학이 이루어졌다. 주어사 아래에 있는 주어리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대략 400년 내외 된 나무들이다. 주어사를 오르내린 선각자들이 아마 이 나무 아래서 다리쉼을 했을 ..

천년의나무 2017.06.23

효종왕릉 느티나무

효종왕릉 재실 뜰에는 회양목 외에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재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관리하시는 분이 말하길 잎이 돋아나면 더 멋있다고 하신다. 특히 첫눈이 내리면 최고로 환상적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효종왕릉 재실(齋室)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아담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하다. 뜰에 있는 이 느티나무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살린다. 옆에 있는 세종왕릉인 영릉과 달리 이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늘 조용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느티나무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04.21

효종왕릉 회양목

세종왕릉인 영릉(英陵) 옆에는 효종왕릉인 영릉(寧陵)도 있다. 두 능이 한글 이름은 같다. 효종왕릉 재실(齋室) 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이라고 한다. 여기에 재실이 조성된 게 1763년이라니 수령은 약 300년 정도로 짐작한다. 키는 4.7m고, 줄기 둘레는 21cm다. 워낙 더디게 자라는 나무라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에 최고령이었던 용주사 회양목이 고사하고 난 뒤에 효종왕릉 회양목이 천연기념물 자리를 물려받았다. 2005년의 일이었다. 이 회양목은 수형이 예쁘다. 무척 곱게 자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회양목에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었다. 먹이도 먹지 않았는지 삐쩍 마른 모습이 애처로웠다. 동물이 자식을 키워내는 정성은 갸륵..

천년의나무 2013.04.21

영릉 소나무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다. 왕릉은 어디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영릉의 소나무는 특별히 더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팔등신의 미끈한 미인들을 보는 것 같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게 수복방(守僕房) 앞에 있는 반송이다. 다섯 개로 갈라진 가지가 균형있게 잘 자랐다. 반송치고는 키도 상당히 크다. 수복방은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이나 청소 등의 허드렛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인 수복(守僕)이 거처하던 곳이다. 영릉을 둘러싼 소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솔바람을 맞아보면 눈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진다.

천년의나무 2013.04.20

신륵사 은행나무

훤칠하게 잘 생긴 은행나무다. 신륵사에는 600년 된 나무 세 그루가 있다. 향나무, 참나무, 그리고 이 은행나무다. 어쩌면 나이가 다 비슷한지, 아마 신륵사가 중창된 나옹선사 시대 쯤으로 추정해서 나무의 나이를 정하지 않았나 싶다. 이 은행나무는 두 개의 줄기가 거의 나란하게 뻗어 올랐다. 키는 22m이고, 줄기 둘레는 각각 3.1m와 2.7m다. 한창 장년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2.10.07

신륵사 향나무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고려 말에 나옹선사가 머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선사가 입적하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고, 그뒤에 여러 건물들을 신축했다고 전한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지공, 나옹, 무학, 세 분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이다. 이 조사당 앞에 수령이 6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나옹선사의 제자였던 무학대사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높이는 5m, 줄기 둘레는 1.3m인데 줄기가 많이 상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잎을 보면 나무는 아직도 원기왕성하다. 다만 조경수처럼 너무 예쁘게 다듬어놓은 게 도리어 거슬린다. 드러나지 않을 듯 적당히 손질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10.07

고달사지 느티나무

폐사지에 서 있는 한 그루 고목만큼 흥망성쇠의 허무함을 말해 주는 것도 없다. 성(盛)하면 쇠(衰)하고 차면 기우는 진리에서 나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폐허로 변한 유적지에 우뚝 서 있는 고목은 인간사의 무상함을 말없는 말로 전해준다. 여주 고달사지 입구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이가 400 년이 되었다니까 고달사가 폐사된 경위를 이 나무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전에는 이 주위에 마을이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사하촌의 당산나무였을 수도 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복구를 끝낸 허허벌판 절터에서 이 느티나무는 단연 돋보인다. 고달사지 느티나무는 곱고 단아하게 생겼다. 가까이서보다는 멀리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곱게 늙어가는 참한 여인네가 연상된다. 이 느티나무의 높이는 18 m이고, 줄기 둘레는 4...

천년의나무 2009.05.07

밤골 뽕나무

터에 이웃한 밭에는 큰 뽕나무가 있다. 어릴 때 밭에서 가지만 무성하고 높이래야 고작 사람 키의 한두 배정도 되는 뽕나무만 기억에 나는 나로서는고목이 된이 뽕나무가 무척 신기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걸 뽕나무로 맞추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뽕나무라는 걸 알려주면 모두들 놀란다. 뽕나무도 이렇게 클 수 있느냐고 되묻곤 한다. 지금은 누에를 키우는 농가가 없지만 옛날에 뽕나무는 농민들과 가장 가까운 나무였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집집마다 누에를 쳤다. 아마도 누에치기는 농가 수입의 중요한 몫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 어두침침하고 후덥지근한 느낌, 그리고 온 몸이 간질거리는 듯한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나는 누에방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새까만 누에알에서 시작하여 뽕나무를 ..

천년의나무 2004.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