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밤골 뽕나무

샌. 2004. 6. 24. 20:41

 

터에 이웃한 밭에는 큰 뽕나무가 있다.

어릴 때 밭에서 가지만 무성하고 높이래야 고작 사람 키의 한두 배정도 되는 뽕나무만 기억에 나는 나로서는고목이 된이 뽕나무가 무척 신기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걸 뽕나무로 맞추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뽕나무라는 걸 알려주면 모두들 놀란다. 뽕나무도 이렇게 클 수 있느냐고 되묻곤 한다.

지금은 누에를 키우는 농가가 없지만 옛날에 뽕나무는 농민들과 가장 가까운 나무였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집집마다 누에를 쳤다. 아마도 누에치기는 농가 수입의 중요한 몫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

어두침침하고 후덥지근한 느낌, 그리고 온 몸이 간질거리는 듯한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나는 누에방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새까만 누에알에서 시작하여 뽕나무를 잘라오고 때에 맞춰 뽕잎을 넣어주고 나중에 흰 고치가 되기까지 온 가족이 매달렸다.

누에치기는 지금 되돌아보아도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작업이었던 듯 하다. 아이들도 뽕나무를 나르면서 어른들을 도와주었다.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며 내내 뽕잎을 먹어치우던 누에가 머리를 흔들어대며 흰 실을 뿜어내어 고치를 만들게 되면 누에방에는 출입 금지가 되었다.

나중에 마당에서 할머니가 고치를 풀면 옆에서 기다리다가 번데기를 얻어 먹던 기억도 난다.

누에를 치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남은 것은 아득한 그리움뿐이다.

터에 있는 저 뽕나무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뽕잎을 따지는 않고 떨어지는 오디를 받기 위하여 밑에다 깔개를 깔아놓았다. 이 뽕나무의 씨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국내의 연구소에서도 채취해 가고, 대부분은종자용으로 쓰기 위해 중국에서 가져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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