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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300]

선생님 말씀하시다. "윗사람을 모실 때 세 가지 잘못이 있으니, 말을 안 해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조급한 짓이요, 말을 해야 할 경우에 말하지 않는 것은 감추는 짓이요, 얼굴빛도 보지 않고 중얼거리는 것은 눈 먼 짓이다." 孔子曰 侍於君子 有三愆 言未及之而言 謂之躁 言及之而不言 謂之隱 未見顔色而言 謂之고 - 季氏 4 윗사람 모실 때의 말가짐에 대한 가르침이다. 말을 해야 할 때 입 다물지 말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 나서지 말고, 상대의 얼굴빛을 살피지 않고 중얼거리지 말라는 세 가지 금기사항이다. 꼭 윗사람만이겠는가. 아랫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말에는 상대가 있으니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말가짐은 결국 마음가짐과 연결되는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8.08.03

외롭지 않은 말

이탈리아 여행에 갖고 가서 읽은 책이다. 여행 중에는 바쁘고 피곤해서 책을 볼 짬이 나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로 읽었다. 대부분 곤히 잠 자는데 독서등을 켜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 이 책은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속어나 은어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의 겉뜻과 속뜻, 주석과 용례를 달았다. 사전처럼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권혁웅 시인이 썼다. 에는 77개의 말이 실려 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교회 오빠, 귀요미, 그림 좋은데?,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넘사벽, 늙으면 죽어야지, 다리 밑에서 주웠어, 루저, 먹방, 밀당, 빵꾸똥꾸,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삼삼한데?, 식당 이모, 심쿵, 썸, 아몰랑, 언제 밥 한번..

읽고본느낌 2018.03.25

실언 / 고증식

고향에서 이발로 먹고 사는 깎새 형이 들려준 우스개 한 토막 바야흐로 설 단대목에 오줌 누고 뭐 볼 새도 없이 바쁜데 엊그제 새로 들인 머리나 감기는 시다 녀석 하나가 세상 둘도 없는 뺀질이더라고 그 녀석 그날따라 별나게 더 뺀질거려 보다 못한 깎새 형 버럭 한소리 질렀다는데 - 야 이놈 자식아, 그만 좀 뺀질거리고 얼릉 여 와 손님 대가리나 감겨! 순간, 길게 목 빼고 엎드렸던 그 손님 문제의 대가리 번쩍 치켜들고 한참이나 뻥하게 쳐다보더라고 - 실언 / 고증식 당황했을 깎새 형과 손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시다 녀석은 얼마나 킬킬거렸을 것인가. 악의가 아닌 줄 알기에 실소 뒤에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을 것 같다. 아마 유머 있는 손님이라면 "야, 대가리 좀 잘 감겨봐." 정도의 대꾸는 있지 않..

시읽는기쁨 2015.09.05

한 글자

먼 옛날, 사람들이 처음 말이란 걸 하기 시작했을 때 사물의 이름은 단음절이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마디로 된 말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그 한 글자로 된 말에 주목했다. 는 카피라이터 정철 씨가 쓴 단상집이다. 카피라이터답게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혜안이 곳곳에 보인다. 짧은 글이지만 쉽게 읽히지 않고 한참 동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삶의 경구로 삼을 만한 내용이 많다. 책을 보면서 나는 건성으로 세상을 살고 있구나 싶어 자책한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 얼마나 깊으면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까. 지은이가 말한 대로 "세상은 넓고, 나는 한없이 좁다." 책에 나오는 262개 글자 중에서 마음 끌리는 대로 몇 개를 골라..

읽고본느낌 2015.03.10

은는이가 / 정끝별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 강'이' 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세우듯 구름이나 바람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을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

시읽는기쁨 2015.03.08

꽃의 어원

'꽃'의 어원을 알고 싶어 국어 샘에게 물어보았더니 꽃의 고어는 '곶'이었다고 한다. '곶'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된소리로 변해 '꽃'으로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용비어천가에서 '곶 됴코 여름 하나니'라는 구절을 공부한 게 기억났다. 그리고 '곶'의 의미는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꽃이 '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국어 샘과의 대화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곶의 뜻이 딱 하나밖에 없다. 한자로는 '串'이라고 쓰는,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나온 땅이다. 식물에서 꽃은 가지에서 솟아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곶'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에 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된 건 아닐까, 억지로 추측해 본다. 아니면 한자의 '串'이 꽃의 모양을 닮아서 ..

길위의단상 2014.08.22

논어[60]

어느 사람이 말했다. "옹은 사람답기는 하지만 무뚝뚝합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재잘거려서야 됩니까! 입술에 붙은 말로 지껄이면 미움받기 꼭 알맞지요.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재잘거려서야 됩니까!" 或曰 雍也 仁而不녕 子曰 焉用녕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녕 - 公冶長 2 공자는 말 많은 걸 무척 싫어했다. 옹(雍)이라는 제자가 너무 무뚝뚝해서 탈이라는 어느 사람의 말에 공자는 반대로 답한다. 오히려 무뚝뚝하니 좋은 일이다. 제일 하급이 인(仁)하지 않으면서 말만 재잘거리는 사람이다. 인(仁)하지 않더라도 재잘거리지만 않는다면 사람다운 길로 갈 자격은 있다. 공자는 어눌한 걸 오히려 장점으로 본다. 사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경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도 '미련한 자는 말을..

삶의나침반 2013.12.18

논어[57]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사람들은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실행이 못 미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子曰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선생님 말씀하시다. "쓸모 있는 인간은 말은 더듬되 실행은 재빠르게 하느니라." 子曰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 - 里仁 17 말을 지나치게 하게 된다는 점이 트위터의 해악이라면서 어느 분이 트위터를 끊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들리는 '카톡'이라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린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이젠 멀리 있는 사람과도 쉼 없이 재잘거릴 수 있다. 하나 정작 옆에 있는 사람과는 소통이 잘 안 된다. 현대인은 너무 말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외로워졌다. 말이 많아진 반면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트위터를 그만둔 게..

삶의나침반 2013.11.19

2011년을 웃긴 말

어느 네티즌이 2011년의 망언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역시 MB의 발언이 1위에 올랐다. 이에 사람들은 '도덕적이 아니라,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명박 장로님, 방언 터지셨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분들, 늘 우리를 즐겁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한편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俺耳盜鐘)'을 뽑았다. '엄이도종'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에 대한 비판의 사자성어다.

길위의단상 2011.12.21

연장론 / 김나영

다 꺼내봤자 세치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아이 눈에 박힌 티끌 핥아내고 한 남자의 무릎 내 앞에 꿇게 만들고 마음 떠난 애인의 뒤통수에 직사포가 되어 박히던, 이렇게 탄력적인 연장이 또 있던가 어느 강의실, 이것 내두른 대가로 오 만원 받아들고 나오면서 궁한 내 삶 먹여 살리는 이 연장의 탄성에 쩝! 입맛을 다신다 맛이란 맛은 다 찍어 올리고 이것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덕분에 내 몸 거둬 먹고 살고 있다면 이처럼 믿을만한 연장도 없다 궁지에 몰릴 때 이 연장의 뿌리부터 舌舌舌 오그라들고 세상 살맛 잃을 때 이 연장 바닥이 까끌까끌해지고 병에서 회복될 때 가장 먼저 이 끝으로 신호가 오는 예민한 이 연장,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사마천은 이것 함부로 놀려서 궁형의 치욕을 한비자는 민첩하게 사용 못한 죄로 사약..

시읽는기쁨 2011.06.15

좋은 하루 되세요

명색이 글이랍시고 날마다 끼적거리다 보니 가능하면 정확한 말을 찾아 쓰려고 애쓰게 된다. 또 문장이 문법에 맞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잘못 알고 있는 낱말이 무척 많고 제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잘 쓰는 표현 중에 ‘좋은 하루 되세요.’가 있다. 메일이나 블로그의 댓글 인사말에서 상대방에 대해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문법상 잘못 되었다는 지적을 L 형으로부터 받았다. 사람을 ‘하루’가 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것도 사람을 여행이 되라고 하니 적절치 않음은 마찬가지다. 또 ‘~되세요.’와 같이 명령형으로 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하다고 지적해 주었다. 가만..

길위의단상 2009.11.19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되는 책이 있다. 고래가 어떻게 춤을 추는지 호기심이 생기지만,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제목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의 사기를 높여주는 대신, 비난이나 질책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칭찬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해였던가, 자신감 없이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있던 한 아이가 다가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선생님에게서는 지적인 포스가 느껴져요.” ‘지적인 포스’라니, 아이가 쓰기에는 생경해 보이면서 나에게도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말이 인상적이어서 난 아직도 그때의 상황을 선..

길위의단상 2009.03.11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또, 말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곧 말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둘이 서로 악순환을 하며 돌고, 어떤 사람에게는 선순환을 하며 안사람이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마음의 세계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옆의 친구는 애써 좋은 말과 좋은 생각을 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때는 귀에 잘 안 들어왔는데 지나고 보니 친구의 말이 옳았다. "행복해..

시읽는기쁨 2008.10.24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TV를 볼 때 가끔 얼굴이 찡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동원된 방청객의 지나친 반응, 출연자들의 과도한 몸짓들,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남용 등이 그렇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에서 시식하는 사람의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라든가, 재미를 위해 그러는지 몰라도 시골 노인들의 경박하고 과장된 모습만 강조해 내보내는 장면은 보기에 민망하기까지 하다. 나이 든 노인들이 TV를 통해 희화화되고 있는데 모든 것을 오락 프로그램 정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 TV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TV에서 들을 수 있는 말 중 귀에 거슬리는 대표적인 것이 ‘너무’와 ‘같아요’이다. ‘너무’와 ‘같아요’가 어법에 맞게 사용되지 않을 때 뭔가 어색하고 거북하다. ‘너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

길위의단상 2007.03.16

너무 많은 입 / 천양희

재잘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재잘된다 잎들이 많고 입들이 너무 많다 이(李) 시인은 마흔살이 되자 나의 입은 문득 사라졌다 어쩌면 좋담,이라 쓰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좋담 쉰살이 되어도 나의 입은 문득 사라지지 않고 목쉰 나팔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좋담? 다릅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다른 소리를 낸다 잎들이 다르고 입들이 너무 다르다 - 너무 많은 입 / 천양희 지구는 시끄럽다. 수많은 전파와 소리로 뒤덮여 지구 역사상 이만큼 소란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TV를 켜면 수십 개 채널이 아우성이고 컴퓨터에서도 무수한 말들이 난무한다. 우리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과잉'이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 과잉의 말들도 있다.우리는 과잉의 중독 환자들이다. 현..

시읽는기쁨 2007.01.29

눈과 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우리말

새벽에 서울 지방에는 땅을 살짝 덮을 정도의 눈이 내렸다. 이런 눈을 순우리말로 '살눈'(살짝 얇게 내린 눈)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눈의 종류에 따라 재미있는 여러 이름들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표현들을 보면 한글의 다양한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의 이름을 모아 보았다. 함박눈 -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가랑눈 - 가랑비 내리듯 잘게 내리는 눈 소낙눈(소나기눈) - 갑자기 많이 내리는 폭설 싸락눈(싸라기눈) - 얼어서 내리는 싸라기 같은 눈 눈발 - 발처럼 줄을 이어 죽죽 내리는 눈 누리 - 단단한 덩이로 내리는 우박 눈보라 - 바람에 날려 세차게 몰아치는 눈 눈갈기 - 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 눈안개 - 눈발이 자욱하여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상태 진눈깨비(..

길위의단상 2006.11.30

세상이 무섭다

등 뒤에 한 무리 중학생 아이들이 따라온다.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스치며 지나간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말 한 마디가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또 하나 디졌다.” 옆의 아이들이 따라서 킥킥대며 웃는다. ‘디졌다’ 또는 ‘뒈졌다’는 죽는 대상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인데 짐승이나 미물에게라도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세상이 너무 살벌해지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언어 표현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잠시만 있어보면 옆에 있기가 민망할 정도인 경우가 많다. 저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교를 해야 할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명을 사랑하고, 다른 생명의 아픔에는 같이 연민을 느껴야 한다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

길위의단상 2005.03.22

[펌] 폭력 냄새나는 말들

전원마을, 푸른마을, 강변마을… 아파트 단지 이름들은 대부분 예쁘다. 그런데 그 이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름으로 얼마나 커다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전원마을은 전원을, 푸른마을은 푸름을, 강변마을은 강변의 풍경을 해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해안도로를 지나며 만나는 간판들도 마찬가지다. 노을횟집은 노을을, 갯벌민박은 갯벌을, 등대편의점은 등대를 가리고 있다.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그 폭력성을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간판의 폭력성은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지만 도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도회지의 간판들은 폭력성을 넘어 잔인함까지 드러낸다. 생 오리 철판구이, 돼지 애기보, 새싹 비빔밥, 뼈 발린 닭… 같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잔..

길위의단상 200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