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 9

되어가는대로 살기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고,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가까워지지 못한다. 이만큼이나마 세상을 살아보니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더라. 세상일은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헛심만 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순리에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되어가는대로 살기'다. 되어가는대로 살기는 되는대로 살기와는 다르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자기 통제와 규율이 있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실행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열매를 맺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일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진인사..

참살이의꿈 2022.12.22

인생을 낭비한 죄

오래전에 본 영화 '빠삐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대면하는 부분이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해서 누명을 벗으려 한다. 그러나 탈출은 실패하고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악몽을 꾼다. 먼 사막의 지평선에 검사가 나타나 빠삐용을 바라본다. 빠삐용은 외친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는 말한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군다. "나는 유죄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고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빠..

참살이의꿈 2022.11.21

그냥 둔다 / 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 그냥 둔다 / 이성선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으면서 비움과 내려놓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한다고 비워지고 내려놓게 되지야 않지만 일상이 비틀어지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이다. 늘 가슴 한 켠에 묵직한 뭔가가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누가 집어넣은 것이 아닌 내 스스로 만든 근심덩이다. 잔뜩 움켜쥐고는 힘들어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의미 있음이나 없음으로 가치를 나눌 수 없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할 뿐 내 분별심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내 주관과 아집에 의해서 '있는 그..

시읽는기쁨 2022.08.16

논어[267]

선생님 말씀하시다. "가만히 있어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순임금인가! 대체 무엇을 했을까! 몸을 공손히 하고 왕위에 앉아 있기만 했던 것이다."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 衛靈公 5 에서 무위(無爲)를 만나니 반갑다. '몸을 공손히 하고 왕위에 앉아 있기만 했다'는 표현은 도가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가와 도가가 앙숙이 되기 전에는 이렇듯 서로 공통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공자는 무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 반면, 노자나 장자는 끝까지 무위에 매달렸던 점이 다른지 모른다. 어쨌든 공자도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최고의 다스림으로 본 것은 분명하다.

삶의나침반 2017.12.18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이런 류의 제목에 끌리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작 지은이는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기웃거린다고 별명이 오지래퍼(Ozirapper)다. "범인(凡人)은 이해 못 할 시를 쓰고, 정부가 부숴버린 제주 바위 옆에 돈 안 되는 도서관을 짓고, 환쟁이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영화판에 참견하고, 만화를 향한 연심(戀心)은 책 한 권이 족히 넘는 그는, 공사다망한 중에도 틈틈이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인생이 '작당'인 한량이다. 평생 멋대로 살아왔으나 잘못 살았던 적 없고, 누구도 설득하려 들지 않는 대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 씨의 자기소개다. 역설적인 제목의 은 재주 많은 이 분이 쓴 에세이집이다.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 스님은 태블릿 PC를 ..

읽고본느낌 2014.10.22

논어[6]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은 어느 나라를 가시든지 기어코 정치에 참여하시니, 그처럼 바라시기 때문인가? 그렇잖으면 그들이 부탁하기 때문인가?" 자공이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부드럽고 착하고 공손하고 검박하시므로 사양하시되 절로 그렇게 되는 거야! 우리 선생님의 방법은 남들이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단 말이야!"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 人之求之與 - 學而 6 공자학당 안에서도 공자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제자도 있었던 것 같다. 자금이 자공에게 한 질문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공자를 변호하는 자공의 답변은 선생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온화[溫], 선량[良], 공손[恭],..

삶의나침반 2012.12.11

장자[187]

무위로 돌아가면 근심하지 않고 무위를 행하면 거짓됨이 없을 것이다. 성인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일을 일으키므로 매사에 성공한다. 어떤가? 인위의 짐을 싣고 평생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反無非傷也 動無非邪也 聖人躊躇以興事以每成功 奈何哉 其載焉終爾 - 外物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공자를 폄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에는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공자와 대비시킴으로써 자기 학파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후대의 장자학파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를 읽을 때 이런 데를 만나면 껄끄럽다. 장자라면 이런 식의 유치한 형식은 취하지 않았으리라. 여기서는 '주저(躊躇)'에 주목한다. '성인주저(聖人躊躇)'라고 했다. '성인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일을 일으킨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

삶의나침반 2011.12.01

무위

얼마 전에 TV에서 노년 생활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거기서 한 강사가 노년에 제일 경계할 것으로 무위(無爲)를 들었다. 아마 이분은 무위를 할 일이 없는 상태로 해석한 것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노인이 되었을 때 일 없이 빈둥거리게 되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 그것이 무위라면 강사의 말도 맞다. 하긴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는 부정적 말도 있으니무위를 좋게 보긴 어렵다. 그런데 무위(無爲)란 원래 노장철학의 중심 개념이다. 특히 노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여기서 무위는 유위(有爲)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은 행위를 말한다. 무위란 무심하게 함, 무욕으로 함, 또는 이기적 욕망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다. 그러므로 무위는 가장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범주..

참살이의꿈 2011.01.25

무위의 재능

장영희 교수가 쓴 책을 읽다가 ‘무위의 재능’이란 제목의 글을 만났다. 자신이 이렇다 할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이 없지만 ‘무위의 재능’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만은 넘치게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재미있는 글이었다. 아마 장 교수의 신체적 조건이 어릴 때부터 혼자 있으면서 혼자 즐기는 능력을 키우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본다. 일이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일에 매달려서 살아온 관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 무능하거나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한다. 심지어는 옆의 사람이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곱게 보아주지도 않는다. 남자가 은퇴 후에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

참살이의꿈 201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