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로 돌아가면 근심하지 않고
무위를 행하면 거짓됨이 없을 것이다.
성인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일을 일으키므로 매사에 성공한다.
어떤가?
인위의 짐을 싣고 평생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反無非傷也
動無非邪也
聖人躊躇以興事以每成功
奈何哉
其載焉終爾
- 外物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공자를 폄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장자>에는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공자와 대비시킴으로써 자기 학파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후대의 장자학파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장자>를 읽을 때 이런 데를 만나면 껄끄럽다. 장자라면 이런 식의 유치한 형식은 취하지 않았으리라.
여기서는 '주저(躊躇)'에 주목한다. '성인주저(聖人躊躇)'라고 했다. '성인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일을 일으킨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머뭇거리며 망설인다'는 뜻이다.<도덕경> 15장에도 비슷한 의미의 구절이 나온다. 도를 터득한 사람의 형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머뭇거리는 모습은 마치 겨울에 살얼음판 시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마치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하다.'[豫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성인은 그 속을 헤아리거나 깊이를 알 수는 없지만,모습을 묘사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나대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노장철학의 특징이 바로 이런 수동성에 있다. 근육질 철학이 아니다. 부드럽고 유연한 여성성에 바탕을 둔 철학이다. 그러므로 무위(無爲)란 나대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인의(仁義)를 내세워 유세하는 공자학파가 마땅찮게 보였을 것이다. 장자학파가 보기에 그건 고통에 고통에 더하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