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46

프로 기사와 다면기

서울시의 차 없는 날 행사의 하나로 광화문에서 프로 기사와 일반인과의 다면기가 있었다. 프로 기사 100명이 나와서 시민 1,000명과 지도 대국을 가졌다. 프로 기사 한 사람이 열 명을 상대로 두는 것이다. 광화문 보도에 네 줄로 천 개의 바둑판이 놓여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두 주 전에 행사 소식을 듣고 나도 신청을 해서 참석했다. 우리 조에서 수고한 기사는 이동휘 초단이었다. 재작년에 입단한 젊은 기사인데 진지하게 바둑을 둬주어서 좋았다. 다섯 점을 놓고 시작했다. 프로 기사와는 처음 대국하기 때문에 무척 설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바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우기 위해서 두기 때문에 승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마를 죽이지 말자, 쌈지 뜨지 말고 중앙으로 나가자, 이 두 가지를 염..

사진속일상 2015.09.20

대국

한국의 현대 바둑사에서 가장 기억될 대국이라면 조훈현 9단과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이 맞붙은 1989년의 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 5국일 것이다. 전까지는 일본이 세계 바둑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녜웨이핑이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중국 바둑이 크게 융성하자 중국 출신의 대만 재벌인 잉창치씨가 전 세계의 바둑 고수 16명을 초대해 실력대결을 벌여보기로 한 것이 응씨배였다. 우승 상금이 40만 달러로 당시 윔블던 테니스 우승 상금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이런 거액을 제시한 데는 중국이 반드시 우승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둑의 변방이었던 한국은 이때 조훈현 9단만이 초대됐다. 조훈현 9단은 미완의 강자로 여겨졌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16강전에서 왕밍완, 8강전에서 고바야..

읽고본느낌 2015.09.16

설매재 바둑

바둑에 미친 사람들이다. 다섯 명이 휴양림에 집 하나를 얻어서 주야장창 바둑만 두고 왔다. 잠자고 밥 해 먹는 시간만 빼고는 2박 3일 동안 내리 바둑만 두었다. 원래는 가까운 유명산에 등산할 생각이 있었지만 바둑에 취하다 보니 나설 마음이 안 생겼다. 좋아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회원 중 한 명이 곧 미국으로 이주한다. 자식이 전부 미국에 살고 있어 그곳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일흔 가까이 되어 이국 생활을 시작하는 심정이 착잡하기도 할 것이다. 이번 모임은 송별회 겸해서 만들어졌다. 4라운드까지 돌 계획이었으나 시간에 쫓겨 완결하지는 못했다. 마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다. 안경을 안 가지고 가서 침침한 눈으로 바둑판을 들여다보느라 더 피곤했다. 방 하나에서 생활해야 하는 낡은 숙소도 ..

사진속일상 2015.08.29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어느 분야나 고수의 경지에 오르면 비범한 무엇이 있다. 한 길을 깊이 판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다. 외길을 걸어가는 벽(癖)이 있는 자만의 특성이다. 바둑의 고수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조훈현 씨가 이라는 책을 냈다. 고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사는지 궁금했다. 결국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사 조훈현에게 제일 쓰라린 경험은 자신이 직접 기른 제자 이창호에게 정상을 빼앗기고 무관으로 전락한 때였을 것이다. 책에서도 고백하듯이 이창호가 그렇게 빨리 성장하리라고는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바닥에서 조훈현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담담해졌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바둑판이 싸움판이 아니라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

읽고본느낌 2015.08.14

바둑 삼매경

지인의 집에서 1박 2일간 바둑을 즐겼다. 다섯 명이 3라운드의 리그전을 했으니 한 사람당 12판을 두었다. A - 9승 3패 B - 8승 4패 C - 7승 5패 D - 4승 8패 E - 2승 10패 내 결과는 꼴찌였다. 이번 모임에 대비하여 한 달간 바둑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내 스타일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 대부분 판에서 일방적으로 몰리기만 했다. 한 번 안 풀리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었다. 과도기의 진통으로 생각한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하다. 피곤해도 힘든 줄 모른다. 이 팀은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다음 달이면 한 분이 미국으로 이주한다. 나이 들어서 시작하는 이국 생활이 어떨지 모르지만 안주보다는 도전이 아름답게 보인다. 바둑을 두고..

사진속일상 2015.06.26

바둑과 당구

일은 재미가 없어도 해야 하지만 취미는 다르다. 취미의 속성은 재미다. 재미도 없이 억지로 하는 취미는 없다. 노년이 될수록 취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맞다. 취미가 없다면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을 것이다. 아무리 취미라지만 욕심이 안 생길 수 없다. 실력이 느는 재미가 더해져야 취미도 내용이 알차진다. 취미에서 발전하여 전문가까지 된 사람도 있다. 취미도 건성이 아니라 심취할 때라야 도(道)의 경지에 가까워진다.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집착은 금물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근래 새롭게 재미를 붙인 게 바둑과 당구다. 바둑은 직장 다닐 때 3급으로 뒀다. 실제는 3급에서 약간 약한 편이었다. 퇴직하고 나서 모..

길위의단상 2015.03.04

기원 풍경

퇴직 후에 다시 취미를 붙인 게 바둑이다. 예전에는 직장에서도 쉬는 시간에 바둑을 두곤 했지만, 인터넷 바둑이 성해지고 근무 환경이 빡빡해지면서 바둑판이 없어졌다. 그 뒤 10년 정도는 바둑 둘 기회가 없었다. 인터넷 바둑은 바둑 두는 맛이 나지 않고 체질에도 맞지 않아 가까이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나온 뒤에 우연히 바둑 모임을 하나 알게 되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바둑을 둔다.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바둑 두고, 점심 먹고 다시 들어가 저녁때까지 즐긴다. 그런데도 하루 이용 기료가 2천 원이다. 이러고도 장사가 될까 싶어 걱정될 정도다. 그러나 워낙 대규모다 보니 수익이 나는 모양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원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온통 노인들이다. 기원에서..

사진속일상 2015.02.05

바둑 대회

바둑 대회에 출전하는 J 형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기원에 갔다. 재경 대구경북 지역 중고등학교 대항전이었는데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해서 열전을 벌였다. 공식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문끼리 팀을 이루어 나가는 단체전이기 때문에 개인전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실력이 평준화되어선지 4:3, 아니면 3:2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A 그룹에선 경북고가, B 그룹에선 성광고가 우승했다. 내 모교는 참석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수들은 50대가 드문드문하고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었다. 요사이는 바둑을 두는 젊은 세대를 보기가 어렵다. 번쩍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지지 바둑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진득하게 한 자리에 눌러앉아 긴 시간 머리를 써야 하니 아이들이 따분하게 ..

사진속일상 2014.10.20

9단의 자살골

지난 4월 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9기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보기 힘든 돌발사건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흑]과 김채영 초단[백]이 1:1이 된 가운데 벌어진 마지막 세 번째 대국이었다. 바둑은 박지은 9단의 승리로 굳어진 가운데 몇 군데만 메우면 종국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이 무심결에 우상귀의 흑돌을 이은 것이다. 바둑 초보도 알 수 있는, 놓아서는 안 되는 자충수였다. 김채영 초단은 공짜로 들어온 흑돌을 들어냈고 바둑은 역전되었다. 뒤늦게 착각을 알아차린 박지은 9단은 망연자실했다. 큰 시합에서 9단이 저지른 충격의 자살골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마추어처럼 온정에 기대거나 물릴 수 없다. 바둑 한 수의 치열함을 조치훈 9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길위의단상 2014.04.08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

서봉수 사범은 환갑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선에서 맹활약이다. 최근에는 공식 대국에서 10연승을 거두었다. 서 사범이 바둑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실력이 최전성기였던 90년대보다 세다고 단언했다. 그때는 응씨배를 우승하고, 진로배에서도 9연승을 했다. 바둑 실력이 20대 때 절정이었다가 점차 줄어든다는 게 통념이다. 객관적 성적도 그걸 증명한다. 그런데 서 사범은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꾸준히 는다는 것이다. 바둑 두는 사람은 기력 향상이 최고의 소원이다. 젊었을 때는 죽순이 자라듯 실력이 부쩍부쩍 늘었지만 지금은 제자리 걸음이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쉽게 나이 핑계를 댄다.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 보면 늙었다고 기력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다..

길위의단상 2013.08.25

위기십결

바둑은 선택이다. 바둑 한 판 두자면 백 개가 넘는 돌을 놓아야 하는데 그만큼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는 말과 같다. 오직 이 한 수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여러 개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이 상대의 수와 어울려 한 판의 바둑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선택과 조화다. 바둑을 둬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걸 느낀다. 인생길에서도 수많은 갈림길에 선다.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한 길을 선택한다. 한참 지나서 보면 다른 길이 훨씬 나았음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거기서 우리는 또 다른 선택하고 후회와 자책을 거듭하며 종착지에 이른다. 좋은 바둑을 두기 위해 지침으로 삼는 게 위기십결(圍棋十訣)이다.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다...

길위의단상 2013.01.15

바둑과 인생

한 달에 한두 번은 바둑을 두러 종로에 있는 기원에 나간다. 회원이 다섯 명인데 오전에 한 판을 두고, 점심 먹고, 오후에 세 판을 둔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 그날은 하루 종일 바둑만 둔다. 방내기라고 해서 지는 사람은 집 차이에 따라 돈을 내야 한다. 최하 3천 원에서 1만2천 원까지 나온다. 3만 원 정도면 두 끼 식사를 포함해서 하루를 잘 놀 수 있다. 다섯 명 중에서는 내 실력이 제일 처진다. 2승2패만 해도 준수한 성적이다. 오기가 생겨서 요즈음은 바둑 TV를 보며 공부를 하지만 진보는 거의 없다. 묘한 건 욕심을 부릴수록 바둑은 더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 번에는 과하게 공격하다가 도리어 내 돌이 잡히며 만방으로 지기도 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인데..

길위의단상 2012.04.03

2박3일 바둑여행

보리기우회 회원 다섯이서 2박3일간 바둑여행을 다녀왔다. H 회원의 천안 별장에서 머물며 잠깐 광덕산에 다녀온 걸 제외하고는 줄곧 바둑만 두었다. 다들 바둑을 좋아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밥 먹고 바둑 두는 게 일이었다. 술 마실 줄도 밖으로 나들이 할 줄도 몰랐다. 공식전 결과 내 성적이 맨 꼴찌였다. 신입 회원의 신고식을 한 셈이었다. A 8승3패 +26 B 5승4패 +6 C 5승5패 -10 D 3승6패 -8 E 3승6패 -14 개한테 물리는 꿈을 꾸었다. 내 비위가 이렇게 약한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바둑의 즐거움을 만끽한 여행이었다. 바둑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둬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줄기차게 두는 바둑에 나중에는 좀 지쳤다. 둘째 날 늦은 오후에는 광덕산행을 하며 바깥바람을 쐬었다. 광..

사진속일상 2011.06.06

바둑 피서

덥다. 가만히 있어도 후덥지근하고 몸은 땀으로 끈적거린다. 선풍기 바람도 별 효과가 없다. 우리는 에어컨 없이도 잘만 살다고 큰 소리 쳤는데 오늘은 아니다. 낮에 고양이 눈물 만큼의 비가 지나갔지만 도리어 습도만 높여 놓았을 뿐이었다. 내일 첫째가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서 새 직장에 나가기 전까지 한 달 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내와 아이는 하루 종일 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다. 오후에는 이웃에 사는 G 선배를 불러내 기원에서바둑을 두었다. 사실 바둑보다는 더위를 피하는 게 목적이었다. 시원한 실내에서 바둑 삼매경에 빠지니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없다. 요사이는 인터넷 바둑이 유행이라 사람들이 기원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거리에서 기원을 찾기도 힘들다. 다행히 집 부..

사진속일상 2010.08.04

1단이 되다

휴게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바둑판 앞에 사람들이 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개인별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같이 모이기 보다는 각자 컴퓨터로 게임을 즐긴다. 그래서 휴게실에도 바둑판이 사라졌다. 바둑을 가끔씩 두는 편인데 아직 컴퓨터 바둑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대부분이 속기여서 생각할 여유가 없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돌 놓는 소리, 사람들의 훈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 바둑판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 컴퓨터 바둑에서 1단으로 올랐다. 처음에 2급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만에 두 단계가 오른 셈이다. 실제 급수는5급 정도가 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급에 거품이 많이 끼여있는 것 같다. 한때 바둑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이젠 긴 시간 집중이되지 않는다. 수를 읽어내는 능력도..

사진속일상 200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