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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저녁

지난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설을 쇠고 다시 고향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가 목감기가 걸리신 데다 날씨가 추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온전히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여드레였다. 노쇠한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진폭이 컸다. 불효에 대한 죄스러움과 함께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안타까움이 겹쳤다. 누구나 살고, 늙고, 병들고, 죽지만 내 부모가 되면 그런 과정이 당연하거나 무심할 수 없다. 무자비한 세월이 주는 인생의 쓸쓸함과 허무가 너무나 짙었다. 파스칼은 말했다. "세월 앞에서 인간사라는 것은 생의 본질적 비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시에 피붙이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곁들어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다행히 이틀 동안은 손주가 있어서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사진속일상 2023.01.28

별빛 내시경 / 이원규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 도시를 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반딧불이 은하수 가물가물 첫사랑의 눈빛 두 눈이 멀기 전에 캄캄한 곳으로 가자 예감의 더듬이 더 바스라지기 전에 오지 마을로 별빛 사냥을 가자 네온사인 가로등 텔레비전 핸드폰 별 볼일 없는 세계 최악의 빛 공해 나라 밝아도 너무 밝아 생각은 먹통이고 사랑과 혁명도 시청률이 다 정해져 있더라 한반도 밤의 위성사진이 캄캄한 곳 진안 봉화 영양 인제 개마고원 백두산 북간도의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 가보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아를 카페거리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도 너무 밝아졌더라 나는 왜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동해선 종단열차를 타고 고성 원산 청진 북두칠성 삼태성에게 물어나 보자 울다가 휙 노려보던 당신의 눈초리 별빛을 사냥하다 슬그머니..

시읽는기쁨 2022.12.18

은현리 천문학교 / 정일근

내 사는 은현리 산골에 별을 보러 가는 천문학교가 있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나는 별반 담임선생님. 가난한 우리 반 교실에는 천체망원경이나 천리경은 없다. 그러나 어두워지기 전부터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는 착한 하늘이 있고, 일찍 등교해서 교실 유리창을 닦는 예쁜 초저녁별이 있다. 덜커덩 덜커덩 은하열차를 타고 제 별자리를 찾아오는 북두칠성 같은 덩치 큰 별들이 있고, 먼 광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별도 있다. 오래 전 나도 별과 같은 학생이었다. 그 때의 우리들처럼 별들도 여간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내가 출석을 부르는 사이 슬쩍 자리를 바꾸어 앉는 개구쟁이별이 있고, 시간시간 붉은 옷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멋쟁이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별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혹시 별이 울어 버릴까 두..

시읽는기쁨 2017.07.15

별 / 윤주상

우리가 이 별 저 별 하듯이 너희도 이 인간 저 인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가 너희더러 반짝인다고 말할 때 너희도 우리가 몸부림친다라고 표현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오리온좌 카멜레온좌 카시오페아좌 등으로 쓸데없이 우리가 너희를 갈라 놓았듯이 너희는 우리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우는 자와 웃는 자 오른쪽과 왼쪽 남과 북 등등으로 늬들보다 더 복잡하게 갈라져 있음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별이여 나는 알 수가 없구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고 우리가 너희를 노래하는 밤에도 왜 너희는 결코 우리를 노래해 주지 않는지를 너희가 가장 밝게 빛나는 밤에 우리는 이 땅의 가장 어두운 길을 가고 있음을 별이여 너희는 과연 알기나 하는 일인지 - 별 / 윤주상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위에..

시읽는기쁨 2017.01.06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지은이인 이명현 선생은 전파천문학을 전공한 연세대 교수님이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쉽고 흥미롭게 우주를 소개하고 있다. 밤하늘을 사랑하는 선생의 열정이 글에 녹아 있다. 소개에 보면 선생은 어린 시절에 이미 별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외국의 천문잡지를 구독했고,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도 꾸준히 썼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천문학도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칼 세이건을 존경한다는 데, 한국의 칼 세이건이 될 소질이 충분히 갖추어진 것 같다. 에 나오는 글을 봐도 그 실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별에 꽂혔던 내 옛날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읽고본느낌 2016.09.17

별 / 류시화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 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 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 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 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 시인은 말했다. 별은 내 눈물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는 신비주의자에게 가서 물었다 신비주의자는 별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 네 안에 있는 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 그 설명들을 듣는 동안에 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었다 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 별들을 바라본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인도의 어느 노인처럼 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만으로 만족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 ..

시읽는기쁨 2016.09.11

별을 보면 / 이해인

하늘은 별들의 꽃밭 별을 보면 내 마음 뜨겁게 가난해지네 내 작은 몸이 무거워 울고 싶을 때 그 넓은 꽃밭에 앉아 영혼의 호흡 소리 음악을 듣네 기도는 물 마실 수록 가득찬 기쁨 내일을 약속하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꿇어앉으면 안으로 넘치는 강이 바다가 되네 길은 멀고 아득하여 피리 소린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별 뜨고 구름 가면 세월도 가네 오늘은 어제보다 죽음이 한치 더 가까워도 평화로이 별을 보며 웃어주는 마음 훗날 별만이 아닌 나의 이야기 꽃으로 피게 살아서 오늘을 더 높이 내 불던 피리 찾아야겠네 - 별을 보면 / 이해인 이 시는 수녀님이 21세 때 썼다고 한다. 첫 서원을 하기 전인 예비수녀 시절이었던 것 같다. 첫 연인 '하늘은 별들의 꽃밭'이라는 구절이 오래 기억되는 시다. 며칠 전 TV에 ..

시읽는기쁨 2016.05.07

별을 보며 /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 별을 보며 / 이성선 얼마나 맑은 영혼이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이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고운 걸까. 부끄럽다. 별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 마지막이 10년 전쯤 되던가.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 유성우를 기다렸다. 여주 생활의 막바지일 때였다. 그때로부터 별을 잊으면서 내 삶도 타락되어 갔다. 별은 인간답게 살아가..

시읽는기쁨 2015.11.10

태백산에 오르다

강원도에 간 둘째날, 홀로 시간을 내어 태백산에 올랐다.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태백산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도 가족과 함께 한 길이었지만 따로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태백산은 다음으로 미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미룬 숙제를 하나 해결하듯 가뿐한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태백산 등산 시작점은 유일사, 백단사, 당골이 있는데 원점 회귀로는 비교적 긴 편인 당골을 골랐다. 당골에서 천제단, 문수봉을 거쳐 하산하는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순환 코스다. 태백산은 1,500m급이지만 출발 지점이 고도가 높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당골 광장에서 출발하면 반재 밑까지 계곡과 함께 한다. 가을 아침의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 했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지 하산하는 등산객이 많았다...

사진속일상 2015.09.15

난 별 본 적 없다 / 학생 작품

회색 숲 속 칙칙이 둘러싼 덤불 따라 걸었다. 터덜대는 발자국 하나 찍힐 때마다 뿌옇게 모래먼지가 너덜거렸다. 이제 간신히 열 여서 일곱. 고개 들어봐도 보이는 건 불 꺼진 하늘이다. 까만 밤하늘은 본 적 없다. 파란 갓등에 불 꺼진 듯 그런 하늘만 봤다. 내가 아는 하늘은 분명 낮에는 퍼렇고 밤에는 까만 하늘이다. 어른들은 늦게 들어가는 우리들 불쌍하고 걱정되니 가는 길에 불 켜둔다 했다. 그 졸렬한 불빛에 하늘이 미간 찌푸리고 구역질할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 돌리는 것, 내가 집 가는 길에 분명히 봤다. 나는 이제 겨우 열 여서 일곱이지만 그래도 하늘에 별 있고 달 있는 건 안다. 원래 밤하늘이 시커멓고 거기에 바늘로 구멍 숭숭 뚫은 것처럼 별 있어야 한단 것도 안다. 어른들은 우리더러 책상 앞에 앉..

시읽는기쁨 2013.07.03

별은 다정하다 / 양애경

집에 돌아오며 언덕길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일을 하면서 반짝반짝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내가 혼자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눈에 닿는 별빛이 몇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든지 그 별이 이미 폭발하여 우주 속에 흩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든지 보이저가 가보니까 토성의 위성은 열여덟 개가 아니라 사실은 스물한 개였다든지 그런 걸 알아도 그렇다 오히려 나도 다음 生에는 작은 메탄 알갱이로 푸른 해왕성과 얼켜 천천히 돌면서 영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좋겠다 싶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가운데 내려놓는 여자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 별은 다정..

시읽는기쁨 2012.02.06

별 /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별 / 정진규 지금 슬퍼하는 당신, 별을 볼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다. 지금 아파하는 당신, 별을 낳을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다. 어둠은 다가오는 새벽 때문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로 환하답니다. 지금 웃고 즐거워하는 당신, 당신의 가슴에서는여전히 별들이 빛나고 있나요? 스스로 너무 밝으면 별들은 사라진답니다. 지금 대낮인 사람은 어둡습니다.

시읽는기쁨 2010.12.13

카가야의 밤하늘

카가야의 작품 중에서도 나는 이 그림이 제일 좋다. 석양에 물든 하늘에 초생달이 떠 있고 옆에는 금성이 빛나고 있다.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소녀의 어깨에 걸친 수건과 헝클어진 머리칼이 하루의 고단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개와 함께 나란히 앉아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따스하고 평화롭다. 주황색의 색감도 그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에서 태어난 카가야는 어릴 적부터별을 좋아해 밤하늘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이 살아 있어, 그의 그림은 사람들을 동화와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얼마 전에 카가야의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가 국립과학관에서 열렸다. 그의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신화와 판타지의 나라에 빠져..

읽고본느낌 2009.08.28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

시읽는기쁨 2008.02.24

금성과 목성의 데이트

초저녁 남서쪽 하늘에서는 금성과 목성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숨어서 밀회를 즐기던 둘은 해가 지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두 별은 지난 2일에 가장 접근을 했다는데 어제 저녁에는 약 4도 정도 떨여져 있었다. 왼쪽 밝은 별이 금성이고, 오른쪽에 있는 약간 어두운 별이 목성이다. 이 두 별은 워낙 밝아서 도심에서라도 고개를 하늘로 돌리면 수월하게 만날 수가 있다. 금성의 남쪽 아래로는 처녀자리의 스피카도 볼 수 있었는데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석양을 보러 왔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둘만이 남은 자리, 하늘에서는 두 별이 점점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하늘을 잊고 별을 잊고 사는 것이 당연시되는 요즈음인데,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별을 보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속일상 200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