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11

봄날의 동네 걷기

봄이 한창인 때, 동네 걷기에 나섰다. 우리 동네는 현대와 과거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집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옛날 시골 마을 풍경과 만난다. 전에는 과수원, 논밭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논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도 아직은 농촌 모습이 적게나마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과수원의 복사꽃은 막바지다. 꽃잎은 대부분 낙화하고 일부만 가지에 달려 있다.  걷는 중에 겹벚꽃이 핀 벚나무를 세 그루 만났다. 늦게 보는 벚꽃이 솜사탕 마냥 풍성하고 달콤했다. 꽃그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예쁜 창문을 가진 집은 유치원 건물이다.  마을을 지나 신록 가득한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을 넘어 건너편에 있는 이웃마을까지 가려한다. 이번에..

사진속일상 2024.04.24

매괴장미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감곡매괴성당에서 피는 장미다. '매괴(玫瑰)'는 중국어로 장미꽃이라는 뜻이다. 천주교에서 매괴는 로사리오, 즉 묵주기도를 의미한다. 천주교 전래의 종교적 의미를 가진 매괴꽃이 감곡매괴성당에 있다. 어느 신부님이 정성들여 구해서 심어놓은 것이라 한다. 매괴는 덩굴장미로 분홍색 꽃이 소박하면서 복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화려한 다른 장미와는 느낌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흔히 보는 장미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식이 잘 안 되는지 넓게 퍼지지는 못하고 있다. 매괴장미의 공식적인 품종 이름이 궁금하다. ▽ 매괴 옆에 있는 장미인데 품종이 다르다. ▽ 성당에는 매괴장미보다 이런 일반 장미가 많다. ▽ 감곡매괴성당은 189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초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곡의 ..

꽃들의향기 2020.06.05

성지(8) - 배나드리, 여사울, 남방제, 공세리성당

11. 배나드리 예산군 삽교읍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는 뜻이다. 도리(島里)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있는데 물이 차면 섬으로 될 수 있는 지형이다. 배나드리는 인언민 마르티노의 순교 사적지다. 인언민은 1737년 삽교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집과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였다가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 때 체포되어 1800년에 순교했다. 1817년 병인박해 때도 이 마을 신자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다. 성지는 마을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성지 순례자를 위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12. 여사울..

사진속일상 2018.06.19

성지(2) - 북수동성당

3. 북수동성당 하늘은 잔뜩 흐리고 보슬비가 내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약속한 날이 되니 비가 뿌렸다. 성지를 찾아가는 길이니 어찌할 수 없음도 넉넉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정조가 죽고 천주교 탄압이 시작되었는데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천주교인은 수원 화성으로 압송되어 처형 되었다. 순교터는 화성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북수동성당은 수원 화성 안의 옛 토포청 자리에 있다. 아마 이곳에 수많은 천주교인이 갇혀 있었을 것이다. 북수동성당은 수원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본당으로 천주교 수원 순교성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순교자는 78위이다. 1933년에 폴리(Polly) 신부가 건축한 고딕식 성당이 있었으나 6.25 때 전화로 손상되었고 뒤에 철거되었다. 건물을 재건하기 위..

사진속일상 2017.09.08

성지(1) - 용소막성당, 후리사공소

우리나라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모두 순례해 보자고 아내와 다짐한지 어느덧 7년이 지났다. 퇴직할 무렵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아내는 열심인 신자이지만, 나는 그동안 냉담으로 변했다. 이번 순례에는 종교적 의미 외에 부부가 국내를 함께 여행한다는 데에도 방점이 있다. 전국을 돌면서 큰 나무를 보고, 지역 명소를 찾아보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려 한다.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는 400여 곳이 된다. 가까운 곳은 당일로 다녀오지만, 먼 곳은 1박이나 2박의 여정이 될 것이다. 3년 정도면 일주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무겁지 않게 경쾌한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1. 용소막 성당 1904년에 세워진 교회로 강원도에서는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가 오래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 피..

사진속일상 2017.08.23

손주와 여름 휴가

손주 따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나는 기사 역할을 맡았다. 장마의 막바지여서 여행 내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가끔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2박을 했다. 부여 롯데리조트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건물이다.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에 신경을 쓴 것 같다. 현재를 살지만 우리도 과거의 씨줄과 얽히며 삶의 무늬를 그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과거의 사연이 있다. 놀러 온 사람이 있고, 그걸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 부모를 잘 만나 땀 흘리지 않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근면하게 노동을 해도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옆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손주에게 부여를 설명하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오직 물놀이가 좋은 나이다. 가족이 아..

사진속일상 2017.07.25

용소막성당 느티나무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중앙선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갔다. 서울로 갈 때 왼쪽 자리에 앉아 있으면 멀리 이 성당이 보였다. 나무가 있는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여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오래 바라보곤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대여섯 시간 동안 창밖을 스친 풍경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성당을 둘러싼 나무의 인상이 깊었다. 언젠가는 저 성당에 찾아가 봐야지, 하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만에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느티나무는 옛날의 느낌처럼 아름답고 단정했다. 오래된 성당 건물도 운치 있고 경건했다. 성당과 느티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용소막성당은 시잘레 신부가 1915년에 완공하였으니 백 년이 넘었다. 전통적인 성당 건축의 ..

천년의나무 2017.07.20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수서동성당

10여 년 전 가톨릭에 빠졌을 때 이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드리고 출근하고는 했다. 본당은 아니었으나 분위기가 좋아 자주 찾았던 성당이다. 당시는 신축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깔끔했다. 그 뒤에 이사를 하고 나서는 오랜 기간 멀어졌다. 몇 달 뒤에는 여기에서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다. 수서동성당은 아기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성당이다. 성당 내부는옛 그대로 변한 게 없이 심플한 제대가 눈에 익다. 성당 밖 공간이 협소한 게 흠이지만 앞에 대모산 녹지대가 있어 답답하지는 않다. 묘하게 맺어진 두 번째의 인연에 감사한다.

사진속일상 2011.02.24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낯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일요일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흑석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산길과 국립현충원 경내를 경유하면서 걸었다. 어제 내린 봄비로 산길은 촉촉하고 더욱 폭신해졌다. 꼬불꼬불 이어지고 갈라지는 뒷산길은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얕은 산이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데 그 능선을 따라난 산길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어떤 곳은 길이 아주 예뻐 돌아가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들게 된다. 부드러운 산길을 걷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다. 날나리 신자여서인지는 몰라도 미사에 대한 집중도는 나로서는 성당의 분위기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제일 유감이었던 것이 본당의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

사진속일상 2008.03.30

상도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영세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한 뒤에 품었던 생각 중 하나는 매 주일마다 성당을 순회하며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적어도 서울에 있는 성당만은 모두 들러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성당을 중심으로 찾아다녔으나 계속되지는 못했다.그것은 희망사항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은 상도동성당을 찾아가서 미사를 드렸다. 리모델링을 했다는 성당은 밖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안은 말끔하고 단정했다. 그러나 신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설명대로 너무 복잡한 것이 흠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자들과 들어가는 신자들이 뒤엉켜 어지러웠다. 성당 안 역시 옆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앉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분한 미사 분위기는 내내 지켜지지 않았다. 마침 오늘이 성지주일이었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

사진속일상 200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