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6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1 젊은 날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 를 꺼내 듣다가, 까맣게 잊었던 노래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간까지 되찾고는 한다. 그러니 새 노래를 더 알아 무엇 하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내 한 시절과 단단히 묶여 있는데 지금 들으면 간주마다 되새길 서사가 있어 귀에 더 두툼하고 묵직하니 이제, 모아둔 음반, 가려 녹음해둔 테이프 를 새겨듣기에도 내 세월이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2 옷장을 열어보면, 기워 입지 않고 버리는 부유한 세상으로 건너오며 한 시절 내가 골라 입었던 적지 않은 옷들, 오늘 내 생애처럼 걸려 있거나 쌓여 있다. 다 아직 입을 수 있는 옷들, 반팔, 반바지는 헌 자리 하나 없다. 그러니 새 옷을 더 사 입어 무엇 하나, 문득 열 해, 스무 해 전 옷을..

시읽는기쁨 2021.09.19

박새에게 세들다 / 복효근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너머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겹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이불로 내 안..

시읽는기쁨 2012.09.27

소유와 자유의 황금분할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려 한다. 돈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것도 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황홀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것이 자유의 전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돈을 조금이라도 만지기 시작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는 얻는 듯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박탈당하기 시작한다. 점점 가족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사적인 휴식도 줄어만 간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을 자유는 손톱만큼도 얻을 수 없게 된다.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 일할 자유 외에는 다른 어떤..

참살이의꿈 2011.02.09

밭 한 뙈기 /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밭 한 뙈기 / 권정생 아파보면 내 몸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내 능력이나 재주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다른 것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증서는 일종의 차용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 자리로 돌아간다는데 아쉬울 것 없어야한다. 내 것이라고 우기니 욕심도 생기고 속도 끓이게 되는 것이다...

시읽는기쁨 2009.12.17

돌을 줍는 마음 / 윤희상

돌밭에서 돌을 줍는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남한강 강변에서 돌을 줍는다 마음에 들면, 줍고 마음에 들지 앟으면, 줍지 앟는다 마음에 드는 돌이 많아 두 손 가득 돌을 움켜쥐고 서 있으면 아직 줍지 않은 돌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이미 마음에 든 돌을 다시 내려놓는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또다시 줍고, 버린다 어느덧, 두 손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빈 손이다 빈 손에도 잡히지 않을 어지러움이다 해는 지는데 돌을 줍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도 없고, 돌도 없다 - 돌을 줍는 마음 / 윤희상 우리 사는 모습이 대개 이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줍고 버리고 하는 중에 어느덧 해는 기울고 가야 할 시간이 코 앞에 닥친다. 돌은 지천으로 널려있건만 마음에 드는 돌 하나 구하지 못하고 남는 것은..

시읽는기쁨 2007.01.22

줄이면 얻는다(少則得)

이사를 할 때면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에 놀라게 된다. 살면서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모아 두었는지, 100kg도 안되는 몸뚱어리 하나 살아가는데 꼭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장롱을 열어 보아도 들어있는 옷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무슨 사교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옷들만 해도 꺼내놓고 보면 장난이 아니다. 곁가지들 다 쳐내 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너무 많은 물건들을 보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좀더 간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올해는 그동안 당연시하며 사용해 오던 침대와 소파와 식탁을 없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 없이 불편해서 어떻..

참살이의꿈 20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