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2

공갈빵 / 손현숙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하던 봄날, 우리 엄마 갑자기 내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저쯤 우리 아버지,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지 "현숙이 아버......" 엄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는 "뭐라카노, 아주마시! 나, 아요?"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달아나버린 거지 먹먹하게 서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서러웠거든 우리가 대문 밀치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어디 갔다 인자 오노, 밥 도고!" 시침 딱 갈기고 큰소리쳤고 엄마는 웬일인지 신바람이 나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렸던 거야 우리 엄마 등..

시읽는기쁨 2012.09.21

부도덕하게 살거다 / 손현숙

머리 실핏줄이 막혀서, 하도 기가 막혀서 덜컥 누워버린 늙은 엄마, 늙은 아버지가 병문안 오면 슬쩍 눈 흘기면서 대놓고 “가소, 마”한다 그리고 곧이어 “부도덕한 늙은이!” 혼잣말인 척 짐짓, 다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천 번도 더 들은 저 말, 삼강오륜으로 중무장한 우리엄마는 지금 입만 살아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평생 부도덕했던 우리 아버지 팔순을 넘기고도 정정하게 훠이 훠이 세상 끝까지 마실 다닌다 나, 이제부터 무조건 부도덕하게 살거다 도덕 찾다가 늙어, 어느 날 뒷목 잡고 넘어가느니, 요놈의 사탕 같은 세상 실컷 빨면서 들통 나지 않게 시치미 딱 잡아떼고 치맛자락 살살 흔들면서, 살거다 부도덕한 늙은이! 그 누가 뭐라 뭐라 씹어도 끄떡없는 아버지, 지금 엄마 등 쓸어준다 발 닦아준다 에그그..

시읽는기쁨 201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