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33

논어[131]

선생님은 부드럽지만 싸늘하고, 두려우나 사납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차분하다. 子 溫而려 威而不猛 恭而安 - 述而 33 학교에 나갔을 때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선생이 어떤 기분인지 아이들이 헷갈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선생을 두려워하고 말을 잘 듣는다. 설마 공자도 그런 테크닉을 쓴 건 아니겠지. 제자들이 공자를 본 인상이 묘사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부드럽게, 어떤 사람은 싸늘하게 느꼈을 것이다.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는 않고, 공손하면서 차분한 모습이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대하는 공자의 교육 방법과 일치한다. 부드러운 태도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싸늘하게 대해야 효과 있는 사람도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왼쪽으로 갈 때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때도 있다. 물론 중..

삶의나침반 2015.02.22

논어[13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사람이 서근서근하고, 되잖은 것들은 언제나 찌뿌드드하다." 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 述而 32 '탕탕(蕩蕩)'은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모습이고, '척척(戚戚)'은 걱정이 태산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내 식대로 해석하면 군자는 걱정할 건 걱정하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걱정할 건 걱정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한다. 공자의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소인이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어쩜 그렇게 '되잖은 인간' 부류에 딱 들어맞는지.....

삶의나침반 2015.02.15

논어[129]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치스러우면 불손하고, 검박하면 딱딱하다. 불손한 것보다는 딱딱한 것이 낫다."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 述而 31 현실적인 지적이다. 돈이 많다고 사치하면 건방지게 되고, 너무 아끼기만 하면 딱딱하고 인색해진다. 둘 다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인색한 편이 낫다는 것이다. 공자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의 과잉 소비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 사치한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만이 아니라 못 가진 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검박함은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계층의 사치는 인간 공동체를 균열시키는 원인이 된다.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꾼 공자에게는 마땅찮은 행태였을 것이..

삶의나침반 2015.02.10

논어[128]

선생님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빌게 해달라고 청을 드렸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런 것이 있을까?"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비는 글에 '너를 천지 신명께 비노라' 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도 그런 기도를 드린지는 오래다." 子 疾病 子路 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뇌 曰禱爾于上下神祈 子曰 丘之禱久矣 - 述而 30 스승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는 안절부절못했다. 자로의 성격으로 보건대 스승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로가 한 청은 무속적인 신앙에 근거한 기도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의 일상사에 간섭하는 신적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합리적인 공자가 그런 타력에 기댈 사람이 아니다. 공자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보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삶의나침반 2015.02.06

논어[1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성인이니 사람 구실이니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그저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나 해 둘 정도지!" 공서화가 말했다. "그나마도 저희들은 본받을 수 없습니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 述而 29 공자의 솔직한 자기 평가다. 성(聖)과 인(仁)의 경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건 공자의 겸손이 아니라 사실을 표현한 진솔한 말일 것이다. 완전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공자에게서 본다. 공자는 자신을 항상 '배우는 사람[學人]'으로 지칭했다. 이 정도 말도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만큼 공자를 잘 나타내는..

삶의나침반 2015.02.01

논어[126]

선생님 말씀하시다. "학문쯤이야 나도 왜 남만 못 할까마는 참된 사람 노릇을 함에 있어서는 나는 아직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子曰 文莫吾猶人也 躬行君子 則吾未之有得 - 述而 28 자랑도 아니고 겸손도 아닌 공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공부와 학문에 있어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인간적인 토로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치원에서 배울 정도의 삶의 기본조차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과정의 존재로서 인간은 제 능력껏 노력할 뿐이지 이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길 위의 작은 한 걸음이 사람의 차이를 만든다.

삶의나침반 2015.01.26

논어[125]

선생님은 남의 노래가 좋을 때는 꼭 되풀이하게 한 후 따라서 불렀다. 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 - 述而 27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공자를 만난다. 공자는 노래하는 자리를 즐겨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좋은 노래는 되풀이해서 들으며 따라서 배웠다. 곳곳에 이런 공자의 모습이 보인다. 풍류를 즐기고 유머러스하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공자는 근엄하고 고지식한 유학자 타입은 아니었다. 를 읽으니 공자란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며 점점 더 호기심이 생긴다.

삶의나침반 2015.01.19

논어[124]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 구실하는 길이 먼 데 있을까! 내가 사람 구실하고자 하면 사람 노릇하는 길이 바로 나타나 준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 述而 26 인(仁)이 '사람 구실하는 길'로 번역되어 있다. 단순한 '어짊'보다는 훨씬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사람 사이의 관계망에서 내 역할을 성실히 행할 때 얻어지는 어떤 경지가 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공자의 말에서 주목되는 단어는 욕(欲)과 지(至)다. 사람 구실하는 길을 바라면 거기에 이른다. 중요한 건 내 의지다. 유교는 타력 신앙과 대척점에 있다. 누구에게나 인에 이르는 길이 열려 있다고 공자는 말한다. 좋은 친구를 옆에 두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좋은 자식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좋..

삶의나침반 2015.01.14

논어[123]

호향은 구두쇠만 사는 곳이다. 그곳 아이가 눈에 뜨이자, 제자들이 어리둥절한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아오면 만나주고, 물러가면 할 수 없지! 왜 그렇게 야단들이냐?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나오면, 그 깨끗한 점을 알아주어야지, 지난 일을 캘 것은 없는 거다." 互鄕 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其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 述而 25 호향(互鄕)은 어떤 마을을 가리키는 말일 텐데 '난여언(難與言)'을 굳이 구두쇠의 의미로 번역한 건 이상하다. 서로 말을 섞기 어려울 정도로 천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이 대목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를 볼 수 있다. 호향 아이가 보이자 제자들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관습에 따라 접촉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5.01.09

논어[122]

선생님 말씀하시다. "대체 아는 것도 없이 꾸며대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이것저것 주워 듣고 그 중에서 좋은 것만 골라 그를 따른다. 이것저것 보는 대로 따 담는 것도 지식의 일부가 된다."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 述而 24 공자의 공부는 옛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자는 현실 중심의 경험주의자임을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기술하기만 할 뿐 창작하지는 않는다[述而不作]'가 결코 겸손의 말만은 아니다. 어느 분의 강연에서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말을 듣고 공자가 떠올랐다. 창조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창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창작이라는 말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공자..

삶의나침반 2015.01.03

논어[121]

선생님은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안 했고, 주살을 쏘되 잠든 새는 잡지 않았다. 子 釣而不網 익不射宿 - 述而 23 생태적 관점의 내용이 반갑다. 이렇게 인(仁)은 인간 너머 뭇 생명에로 확장된다. 절제와 중용의 가치가 이 말 속에 있다. 동물에게 이러할진대 사람을 대하는 자세 역시 넉넉히 짐작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동물이 멸종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생명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하다. 개화된 현대인도 아직 이런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큰 스승님이시다.

삶의나침반 2014.12.26

논어[12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착한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꾸준한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좋지. 없어도 있는 체, 텅 비었어도 알 찬 채, 가진 것도 없이 넉넉한 체하면 꾸준하기가 어려운 거야!" 子曰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 述而 22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성인(聖人)이다. 공자가 생각한 성인은 요와 순, 주공이 아닐까 싶다. 그다음으로 군자(君子)가 있다. 여기 나오는 선인(善人)과 항자(恒者)는 군자의 한 모습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가 되는 길을 가르쳤다. 현실은 선인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고, 항자를 만나기만 해도 만족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항자, 즉 꾸준한 사람이란 가식으로 꾸미거나 위선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삶의나침반 2014.12.22

논어[119]

선생님이 가르친 것은 네 가지다. 학문과 행동과 충심과 신의. 子以四敎 文 行 忠 信 - 述而 21 이번에 를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단어가 행(行)이다. 공자 가르침 중에서 실천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습(習)'도 실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배움은 헛것이다. 곳곳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서도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 네 가지였다고 말한다. 그중에 행(行)이 들어있다. 공부에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현대 교육의 문제점은 이 둘 사이의 괴리에 있지 않나 싶다. 지식만 강조할 뿐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소홀히 한다. 참교육은 문(文)과 행(行)의 통합에서 ..

삶의나침반 2014.12.16

논어[118]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희들은 내가 숨겨 논 것이나 있는 줄 아느냐? 내게 숨겨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은 일은 없다. 그것이 바로 나다." 子曰 二三者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 述而 20 "그것이 바로 나다[是丘也]"라는 말에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숨겨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가르침과 실천[行]이 일치했다는 선언이다.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공자의 진면목이 보인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말씀보다는 이런 진솔한 삶의 모습에서 공자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삶의나침반 2014.12.11

논어[117]

선생님 말씀하시다."하늘이 내게 곧은 인격을 마련해 주셨는데 환퇴인들 제가 나를 어떻게 할 터인고!" 子曰 天生德於予 桓퇴其如予何 - 述而 19 공자가 송나라를 지나갈 때 환퇴가 해치려 했다. 공자 연보를 찾아보니 BC 495년, 공자 나이 57세 때의 일이다. 이즈음의 공자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앞서 광 땅을 지나며 고초를 겪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이 있는데, 사람이 날 어쩌겠느냐는 자부심이다. 공자 쯤되니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공자도 애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탄식을 했다. 공자에게 '하늘[天]'은 무엇이었을까? 나이 50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고 한 말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삶의나침반 2014.12.07

논어[116]

선생님 말씀하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내 스승은 그 중에 있다. 좋은 점은 골라 그 뒤를 따르고, 좋잖은 점은 이를 고치게 된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 述而 18 이 말씀은 확대 해석하고 싶다. 세 사람이 아니라 혼자 길을 가더라도 내 스승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꼭 사람만이 스승이 되라는 법은 없다. 나무나 풀, 구름이나 바람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차라리 인간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승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도 좋은 점은 있으니 잘 살피고 본받으라는 당부일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4.12.02

논어[115]

선생님은 기괴한 것, 폭력, 반란, 귀신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子不語怪力亂神 - 述而 17 공자는 시(詩), 서(書), 예(禮)에 대해서는 늘 이야기했다는 구절이 앞에 나온다. 반대로 공자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괴(怪), 력(力), 난(亂), 신(神)이었다. 이것은 당시 세상을 어지럽히던 것으로, 공자는 이를 부정하고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네 가지 중에서 신(神)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다. 영어 번역을 찾아보니 'spiritual beings'로 되어 있다. 이를 보면 공자는 절대자를 믿는다는 의미에서의 종교인은 아니었다. 형이상학이나 초월 세계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제례 의식을 가지고 유교(儒敎)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뒷날 유학의 이기론도 공자..

삶의나침반 2014.11.27

논어[11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즐겨 깍듯이 배운 사람이지."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 述而 16 나면서부터 알 정도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공자 스스로 말한다. 다만 열심히 배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열정이 '민(敏)'이라는 단어에 잘 나타나 있다. 앎에 대한 갈증이 공자를 만들었다는 건, 호학(好學)에서는 자신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라는 공자 자신의 자부심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되는 아둔한 사람도 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사람이 있고, 하나도 못 깨치는 사람도 있다.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알지는 않았다 해도 앎에 대한 자질은 뛰어난 분이 공자였다. 애쓴다고 누구나 공자 같이 되는 건 아니다. 공자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

삶의나침반 2014.11.20

논어[113]

섭공이 자로더러 선생님의 일을 물은 즉, 자로는 대꾸하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는 왜 '그 사람된 품이 한 번 열이 나면 끼니도 잊고, 즐거움에 취하여 걱정도 잊고, 늙는 줄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葉公問 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 述而 15 자로만큼 공자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섭공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알려주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공자의 반응이 재미있다. 자신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공자의 자기평가인 셈이다. 이 말을 들으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공자의 모습이 보인다. '발분(發憤)'이라는 표현이 특히 그렇다. 끼니..

삶의나침반 2014.11.15

논어[112]

선생님이 늘 이야기하던 것은 시와 역사와 예법이었으니, 이것이 모두 늘 이야기하던 것들이다.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 - 述而 14 늘 이야기했다는 건 중요하니까 강조했다는 뜻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교육할 때 무엇에 중점을 뒀는지 알 수 있다. 시[詩]와 역사[書]와 예법[禮]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정(情), 지(知), 의(意), 세 측면에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시는 인간 우뇌의 영역이다. 공자는 시와 노래를 통해 인간을 감동시키고 정화하려 한 것 같다. 시인 백거이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으로 시만 한 것이 없다[感人心者 莫先乎詩]. 공자가 을 편찬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시의 교육적 기능에 대해서 현대에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꼭 국어 시간에만 배우..

삶의나침반 2014.11.10

논어[111]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물죽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웠을망정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당찮은 재물이나 지위는 나 보기는 뜬구름 같애....." 子曰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述而 13 공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제자들과 백이 숙제 얘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백이 숙제가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결국은 굶어 죽었지만 마음은 떳떳하고 오히려 기쁨을 느꼈으리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불의로 부귀를 누리는 것보다는, 빈한해도 의(義)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러나 장자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백이 숙제도 도척과 같은 도둑놈이다. 도척이 제 이욕을 위해..

삶의나침반 2014.11.05

논어[110]

선생님이 제나라에서 '소(韶)의 곡'을 듣는 동안 석 달 동안 고기 맛조차 잊고 말씀하시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즐거움에 취하고 말았다." 子在齊 聞韶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 至於斯也 - 述而 12 소(韶)는 순 임금 시대의 음악이다. 얼마나 즐거움에 취했으면 석 달 동안 고기 맛조차 잊을 정도가 되었을까. 하루 이틀 정도야 입맛을 잃을 수 있지만 석 달이라니, 이를 보면 공자는 대단한 예술가이자 로맨티스트였던 것 샅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리타분한 유교적 스승상은 실제 공자와 맞지 않는 이미지다. 감성적이고 자유분방한 공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건 유쾌한 일이다.

삶의나침반 2014.10.31

논어[109]

선생님 말씀하시다. "돈벌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면 나는 마부 같은 벼슬이라도 하겠지만, 할 수 없을 바에야 나 하고 싶은 대로나 해 보겠다."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述而 11 부(富)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엉거주춤하다. 부정도 긍정도 아니다. 재물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장자학파와는 완연히 구별된다. 여기서도 돈벌이를 해서 돈을 벌 것 같으면 천한 직업이라도 갖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으니 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번역은 '돈벌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이지만, '富而可求也'가 주는 느낌은 '돈을 버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에 가깝다. 성공 확률이 낮으니 딴 일을 하겠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이상하다. 공자가 단순히 확률을 따져 일을 추진하는 분이 아..

삶의나침반 2014.10.25

논어[108]

선생님이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써 주면 일할 것이요, 버리면 잠자코 있을 것이니, 그야 나나 너는 그럴 수 있겠지!"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거느리신다면 누구를 데리고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맨주먹으로 범을 두들기고, 배 없이 강물을 건너려 들며, 죽어도 좋다고 날뛰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 일할 수가 없다. 하기야 일을 당하면 실패할까 저어하며, 일이 성사되도록 잘 꾸며내는 사람이어야지."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 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謨而成者也 - 述而 10 재미있는 장면이다. 특히 자로의 성격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스승이 안연을 칭찬하는 말에 자로는 군대를 쓰는 일이라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느냐고 묻는다...

삶의나침반 2014.10.19

논어[107]

선생님은 상제의 곁에서 식사할 적에는 배부르도록 드시지 않았다. 子 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선생님이 곡을 한 그날은 노래도 부르시지 않았다. 子 於是日 哭則不歌 - 述而 9 인간으로서 당연한 예의와 배려다. 공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상례보다 주목되는 건 공자가 노래를 즐겨했다는 사실이다. 곡을 한 그날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은 평소에 자주 노래를 불렀다는 뜻이겠다. 공자는 인간 심성을 순화시키는 시와 노래의 교육 기능을 십분 활용한 것 같다. 그를 통해 본인도 인생을 즐겼을 것이다. 예술적 재능은 위대한 스승이 되는 필요 조건인가 보다.

삶의나침반 2014.10.13

논어[106]

선생님 말씀하시다. "달려들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았고, 애태우지 않으면 튕겨 주지 않았고, 한 귀를 보여 줄 때 셋까지 깨닫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子曰 不憤不啓 不비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 述而 8 스승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모두 피교육자의 능동적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분할 분'과 '마음을 태울 비'라는 단어가 나타내듯, 앎에 대한 처절한 열망이 있어야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를 보여줄 때 셋을 깨닫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것은 피교육자의 자질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부는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스승은 옆에서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렇게 박자가 맞을 때 교육은 이루어지고..

삶의나침반 2014.10.07

논어[105]

선생님 말씀하시다. "마른 고기 정도의 예물을 가지고 왔을망정 나는 제자로 삼아 주지 않는 일이 없었다."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 述而 7 가르쳐주는 보답으로 제자에게서 예물을 받는 것은 공자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규모는 달랐겠지만 옛날 우리의 서당도 비슷했다. 훈장도 생활을 해야 했으니 보수를 받는 건 당연했으리라. '마른 고기 정도'라는 표현을 보면 하찮은 예물임에 틀림없는데, 그래도 제자로 삼아주었다고 강조하는 걸 보면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를 중요시했다는 뜻이다. 교육 현장에서 첫째는 학인(學人)의 마음자세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가르침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억지로 붙잡고 놓고 사육하듯 가르치는 현재의 학교 교실은 그런 면에서 자격 미달이다.

삶의나침반 2014.10.02

논어[104]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리에 뜻을 두고, 곧은 마음을 간직하고, 사람답도록 애쓰며, 예술을 즐겨야 하느니라."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 述而 6 참된 인간이 되는 지침이라 할 수 있다. 도(道)와 덕(德)은 바른 마음, 인(仁)은 바른 행위, 예(藝)는 인생을 즐기는 지혜가 아닐까. 특히 주목되는 건 예(禮)가 아닌 예(藝)다. 유어예(游於藝), 예술을 즐겨라! 공자의 말씀이니 더 반갑다. 예는 인문학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제반 활동을 말하는 것이리라. 음악, 운동, 서예 같은 취미 생활을 포함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것이 예다. 참사람이 된다는 건 결국 삶을 예술처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4.09.24

논어[103]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정말 늙어 버렸나 보다!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다시는 꿈에 보지 못하니...."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現周公 - 述而 5 육체의 노쇠보다 이상이 사라지는 게 더 안타깝다. 흠모하는 주공을 꿈에서 볼 수 없다는 것에서, 공자는 자신이 늙어가고 열정도 사그라지는 걸 느낀 것 같다. 열심히 고군분투했지만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적 완성의 길도 멀다. 공자의 회한은 스케일의 크기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는 느낌일 것이다. 공자의 이상이 고작 주공을 닮는 것이었느냐는 의문도 들지만 지금 시각에서의 판단일 뿐, 당시는 2,500년 전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국가나 인물 대부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주례(周禮)를 회복하고픈 공자의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삶의나침반 2014.09.19

논어[102]

선생님이 집에 계실 때는 고분고분하시고, 부드러우셨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 述而 4 공자의 면모를 다시 보게 된다. 밖에서는 엄격하고 위엄있게 행동했더라도, 집에 들어와서는 자상하고 안색이 활짝 피셨다는 얘기다. 보통 남자라면 반대가 아닐까? 나를 돌아보더라도 부끄럽다. 가정은 화평(和平)의 기운으로 밝아야 한다. "집에 계실 때에는 고분고분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남녀를 불문하고 꼭 새겨둘 행동이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이런 데서 드러난다.

삶의나침반 201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