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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열정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전기 영화다. 에밀리가 불가사의한 은둔 시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에밀리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았지만 내면에는 활화산 같은 열정과 갈등이 있었다. 영화는 소녀 시절 에밀리가 다니던 기독교 계통 기숙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관습이나 종교적 가르침에 순응하던 다른 소녀들과 달랐다. 독립적이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중심 가치관을 거부하고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에밀리는 죽을 때까지 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를 쓰며 은둔해서 살았다. 피상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에밀리는 주관이 강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

읽고본느낌 2023.02.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손주가 와서 내 방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얘기 중에도 내가 먼저 책 이야기를 꺼낸다. 초등학교 3학년이니 책보다는 다른 데 관심을 둘 나이지만 책상에 놓인 책들을 보고 손주가 먼저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 왔을 때는 마침 마종기 시인의 라는 책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책에 실린 시 한 편을 읽어 주었다. 손주가 반에서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내가 고른 것은 '우화의 강'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설명을 곁들여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주니..

읽고본느낌 2022.02.08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

시읽는기쁨 2020.08.31

패터슨

뉴저지주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은 버스 기사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해서 저녁까지 버스를 몰고, 퇴근해 저녁을 한 뒤에는 개를 산책시키며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이다. 특이한 점은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쓴다. 시 쓰기가 그의 전부라 해도 좋다. 예술가 기질을 가진 아내도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며 나름의 삶을 즐긴다. 이 영화 '패터슨'은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패터슨 부부의 일주일 동안의 삶을 그린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현 세태와는 정반대의 생활이다. 이런 삶도 충분히 가능하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구인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면 단조롭고 건조한 일상이지만 똑같지는 않다. 영화는 매일 아침 침대에 같이 누워 ..

읽고본느낌 2019.02.18

논어[316]

선생님이 백어에게 말씀하시다.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에다 낯을 맞대고 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 陽貨 9 '주남'과 '소남'은 의 한 부분이다. 아들에게 하는 말을 통해 시 공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시 공부의 실용적인 이득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부정적인 측면을 밝힌다. 시 공부를 안 하면 담장에다 낯을 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자기 눈이 생기지 않는다. 앞에서 '詩可以觀'이라 한 부분과 연결된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남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시나 예술을 포함한 인문적 소양만이 자기 눈을 뜨게 한다.

삶의나침반 2018.11.18

논어[315]

선생님 말씀하시다. "애들은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정서를 일깨워 주고, 뜻을 살펴볼 수 있고, 벗들을 모이게 할 수 있고, 하소연할 수도 있고,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고, 멀리는 군왕을 섬기며, 새나 짐승이나 풀이나 나무들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는데...."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陽貨 8 시를 배울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열거하고 있다. 시 공부를 제자들이 소홀했던가 보다. 당장 쓸모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 시적 감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지금도 옛 시를 인용하는 중국 정치인을 자주 보는데 기저에는 이런 전통이 깔려 있지 않나 싶다. 맹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삶의나침반 2018.11.08

시의 문장들

책머리에 나오는 '왜 시를 읽느냐 묻는다면'이라는 글이 인상 깊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답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시를 읽는 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도 있다고 말한다. 시는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왜냐하면 시는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언어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뒤집는 것, 그리하여 세계의 틈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다. 시를 읽는 것은 멈춰서 돌아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듯이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을 빗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면 다시 먼 길을 갈 힘이 난다. 남들이 좋다는 이 길 저 길 기웃거리지 않고 시를 등불 삼아 오롯이 내 갈 길을 갈 배짱이..

읽고본느낌 2018.07.31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여행 중에 다시 읽어본 책이다. 릴케가 첫번째 답장을 쓴 1903년은 릴케의 나이 28세일 때로 이미 많은 시를 발표하며 명성을 높이고 있을 때였다. 또 몸이 쇠약해서 이탈리아의 휴양도시인 비아레지오에서 쉬고 있었다. 시인이 되기를 지향하는 생면부지의 젊은 청년에게 이토록 친절하고 다정한 충고를 했다는 데서 문학과 사람을 대하는 릴케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편지 교환은 1908년까지 계속된다. 꼭 문학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삶을 대하는 릴케의 진지한 충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인생의 가치는 외적 성공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다. 편하고 쉬운 길보다 어렵고 무거운 길을 가야 한다. 자기 내면의 고독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릴케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청년에게 마치 구도자 ..

읽고본느낌 2017.09.27

퉁 /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고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이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 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랑.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

시읽는기쁨 2014.08.13

[펌] 공광규 시인의 시 창작 이야기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꼭 맞는 대답은 없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

길위의단상 2014.08.11

헛똑똑이의 시 읽기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오탁번 시인의 시론이다. 내용이 딱딱하지 않고 쉬우면서 재미있게 읽힌다. 좋은 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여러 시를 예로 제시하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시어의 선택을 굉장히 중시한다. 시인이 되려면 정확한 우리말 쓰기와 함께 심상에 맞는 어휘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시는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로 시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오 시인은 미당 서정주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데 시는 시 자체로만 봐야지 시인의 인간됨이나 행적은 시 감상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시인을 몰라야 시가 바로 읽힌다. 글쎄, 이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시 작품과 시인을 과연 별개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시인의 삶과 괴리된 시가 좋은..

읽고본느낌 2014.08.10

시집보내다 / 오탁번

새 시집을 내고 나면 시집 발송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속표지에 아무개 님 청람淸覽, 혜존惠存, 소납笑納 반듯하게 쓰고 서명을 한다 주소와 우편번호 일일이 찾아 쓰고 튼튼하게 테이프로 봉해서 길 건나 우체국까지 내 영혼을 안고 간다 시집 한 권 정가 8000원 우표값 840원, * 200권, 300권..... 외로운 내 영혼을 떠나보낸다 십 몇 년 전 을 냈을 때 - 벙어리장갑 받았어요 시집 잘 받았다는 메시지가 꽤 왔다 어? 내가 언제 벙어리장갑도 사줬나?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 끼고 옥수수수염빛 입김 호호 불면서 내게로 막 뛰어오는 아가씨와 첫사랑에 빠진 듯 환하게 웃었다 몇 년 전 을 냈을 때 - 손님 받았어요 시집 받은 이들이 더러더러 메시지를 보냈다 그럴 때면 내 머릿속에 야릇한 서사적 무대가..

시읽는기쁨 2014.07.31

논어[9]

자공이 물었다. "가난 속에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더라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좋지. 그러나 가난 속에서 즐거워하며, 부자가 되어 예법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지." 자공이 말했다. "옛 시에 '끊거니 다듬거니 쪼거니 갈거니' 하였는데 이를 두고 이른 말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야,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한 마디를 일러준 즉 다음 것까지 아는구나."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 學而 9 제자와 스승 사이의 아름다운 대화다. 묻고 답하는 가운데서 깨우치고 격려하는 사제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자공은 공자 제자 중에서도 제일 큰 부자였..

삶의나침반 2012.12.28

시마 / 유용주

그대가 없는 날에도 햇빛은 투명하고 고바우 슈퍼는 문을 열고 우체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꽃은 피어 바람은 불고 강물은 제 갈 길로 가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병원과 약국과 술집과 터미널이 붐비고 붐비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마루는 빗자루와 걸레의 애무를 받고 의자 위로 두툼한 엉덩이들이 내려앉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연못의 물고기들은 은빛 지느러미를 흔들거리고 촛불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깜빡거리고 먼지도 눈을 뜨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시장에선 배추와 무와 하지감자가 바구니 속으로 담기고 돼지와 소들이 여러 토막으로 잘려나가고 알몸둥이의 닭들이 펄펄 끓는 기름솥 속으로 투신을 하고 비듬나물과 상추와 풋고추와 옥수수와 멍게, 해삼, 오징어들이 좌판 위에 진열되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시읽는기쁨 2011.10.31

호수공원 시테마광장

안산 호수공원 안에 '시테마공원'이라 이름 붙은 공간이있다. 산책로를 따라 58개의 시가 시인 소개와 함께 전시되고 있다. 시가 적힌 조형물의 디자인도 예쁘고 선정한 시도 좋다. 겨울이라 약간 썰렁했지만 봄이 되면 시 향기 피어오르는 예쁜 장소가 될 것 같다. 겨울바다 / 김남조 울음이 타는 강 / 박재삼 저녁눈 / 박용래 빗소리 / 주요한 다람다람 다람쥐 / 박목월 광야 / 이육사 절벽 / 이상 낙화 / 이형기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사진속일상 2011.01.20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조영남 씨를 가까이서 본 건 수 년 전 어느 종교 강연회장에서였다. 강연이 끝난 뒤 강사가 청중석에 있던 조영남 씨를 소개하며 소감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때 조영남 씨는 자신의 개신교 경력을 간단히 말한 뒤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당시 강연 주제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영남 씨가 자신은 기독교를 이미 졸업했다는 요지의 발언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 말이 당시에는 상당히 건방지게 들렸지만 지금은 자유주의자로서의 조영남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조영남 씨가 시인 이상의 시 해설서를 냈다. 제목이 이다. 아마 한자를 병기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 이상(以上)이었다. 조영남 씨는 책머리에서 왜 생뚱맞게 이상에 관한 책을 내는 이상한 일을 하..

읽고본느낌 2010.07.26

아네스의 노래 / 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

시읽는기쁨 2010.05.31

작년에 ‘시’라는 제목의 영화를 이창동 감독이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호기심과 함께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시를 주제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낼지가 궁금했다. 더구나 주인공이 윤정희라는 소식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나름대로 기다리던 영화 ‘시’가 이번에 개봉되었고, 칸 영화제에서는 각본상도 받았다. ‘시’를 본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먹먹한 감정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느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도 않는다. 마음이 엉킨 실타래처럼 안타깝고 혼란스럽다. 그 이유는 미자(美子)의 삶이 나와 동일시되기 때문인 것 같다. 고단한 현실을 시로 승화시키려는 미자를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만난다. 미자에게 시는 고통스런 현실을 잊는 환상인지도 모른다. 시에 ..

읽고본느낌 2010.05.24

그녀가 보고 싶다 / 홍해리

크고 동그란 쌍꺼풀의 눈 살짝 가선이 지는 눈가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빛 반듯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도톰하니 붉은 입술과 잘 익은 볼 단단하고 새하얀 치아 칠흑의 긴 머리결과 두 귀 작은 턱과 가는 허리 탄력 있는 원추형 유방 연한 적색의 유두 긴 목선과 날씬한 다리 언뜻 드러나는 이쁜 배꼽 밝은 빛 감도는 튼실한 엉덩이 주렁주렁 보석 장신구 없으면 어때 홍분 백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나풀나풀 가벼운 걸음걸이 깊은 속내 보이지 않는 또깡또깡 단단한 뼈대 건강한 오장육부와 맑은 피부 한번 보면 또 한번 보고 싶은 하박하박하든 차란차란하든 품안에 포옥 안기는 한 편의 詩 - 그녀가 보고 싶다 / 홍해리 마흔 중반에 접어들면서 삶에 대한 의문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삶은 고단하고 남루했으며,..

시읽는기쁨 2009.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