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택 4

석유장수 / 심호택

6학년 때 추운 밤 과외공부 하는데 교실 뒤켠에서 무슨 소리 들립니다. 석유장수 기름 따르는 소리 비슷합니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시며 누구여? 변소 가기 겁난 친구 일 보자고 대둣병에 집어넣은 것이 그만 통통해져 빠지지를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다가오신 선생님께 엉거주춤 알밤 두어 대 얻어터지니 그제서야 비로소 빠졌습니다. - 석유장수 / 심호택 빙그레 미소 짓다가 이내 옛날 추억 속에 잠긴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입시 경쟁이 지금보다 더했다. 중학교가 둘밖에 없던 작은 읍에도 학교가 성적으로 나누어졌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가는 A 중학교, 그리고 미달이 되기도 하는 B 중학교가 있었다. 똥통이라 불린 B 중학교는 장학금이 있어서 공부는 ..

시읽는기쁨 2017.08.31

그 기쁨의 순간들은 / 심호택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나 그 기쁨의 순간들은 살구철이 지난 어느 날 우거진 잎새 사이에서 얼핏! 샛노란 살구 하나 찾아냈을 때 고구마 캐낸 빈 밭에서 무심코 쟁기질 뒤따르는데 덜렁! 고구마 한 덩이 뒤집혀 나올 때 사정없이 가슴이 콩당거리던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 그 기쁨의 순간들은 / 심호택 신문에서 시인의 부음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밤중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운명하셨다고 한다.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시인은 유년 시절의 동심을 그립도록 아름답게 묘사해 내는 솜씨가 뛰어나셨다. 특히 '그만큼 행복한 날이'는 가슴을 울리는 절창이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 봐라 ..

시읽는기쁨 2010.02.02

하늘밥도둑 / 심호택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 날개까지 돋친 놈이 멀쩡한 놈이 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 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 괜찮다 요샛날은 밥도둑쯤 별것도 아니란다 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 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 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 살아갈 희망은 있다고 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네가 헤쳐갔듯이 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 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 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 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 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 나와보면 안단다 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 하늘밥도둑 / 심호택 하늘밥도둑은 땅강아지의 다른 이름이다. 토로래라고도 한다. 동작이 날쌔서 잡으려고 하면 삽처럼 생긴 앞발로 순식간..

시읽는기쁨 2009.04.26

그만큼 행복한 날이 /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 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 살금 잠자리 쫒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던 그 때가 어떻게 행복했을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그 때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가난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마음의 배고픔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허기에 져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의 빈국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의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도가 지나친 풍족과 욕심은 공허와 권태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또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

시읽는기쁨 200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