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주 4

장자[26]

선생이 태어난 것은 때를 만난 것이요 죽은 것은 자연에 순종한 것이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천리에 순응하면 슬픔과 기쁨이 들어올수 없지 옛사람은 이를 일러 천제(天帝)의 저울에서 해방됨이라고 말했네 適來夫子時也 適去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 帝之懸解 - 養生主 4 노자가 죽자 벗이였던 진일(秦失)이 조문을 갔는데 곡만 세 번 하고 나왔다. 크게 슬퍼하지 않는 걸 보고 제자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데 진일은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이탈하는 것이며,형식적으로 곡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짓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은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인 탓도 크다. 그러나 장자의 관점에서 미지(未知)는 두려움이 될 수 없다. 탄생과 ..

삶의나침반 2008.06.22

장자[25]

꿩은 비와 이슬을 맞으며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더라도 조롱 속에 갇혀 길러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먹고살기야 풍성하겠지만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澤雉十步一琢 百步一飮 不기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 養生主 3 이 구절이 좋아서 한 때는 '澤雉[못가의 꿩]'를 내 호로 써본 적도 있었다. 못가의 꿩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고단한 일상을 살지라도 결코 조롱에 갇혀 길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주인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안락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조롱이란 우리들을 옭아맨 속박과 굴레다. 또는 세상에 길들여지고 순치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대부분은 조롱..

삶의나침반 2008.06.15

장자[24]

백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이 닿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이 닿는 대로 삭삭 울리고 칼이 나가는 대로 쉭쉭 소리를 내는데 음악에 맞지 않음이 없어 '상림(桑林)'의 춤과 '경수(經首)'의 잔치에 알맞은 것 같았다. 문혜군은 감탄했다. "하!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쩌면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백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얻은 결과는 도(道)이며 기술보다는 우월한 경지입니다. 처음 소를 해체할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이제 소 전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저는 소를 정신으로 대했을 뿐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감관의 지각이 멈추면 정신이 움직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의지하여 큰 틈새로 들이밀고 큰 구멍을 통행하여 본래의 자연을 따..

삶의나침반 2008.06.08

장자[23]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지혜는 무한하다. 유한한 인생으로 무한한 지혜를 따르면 위태로울 뿐이다. 아서라! 지혜대로 행하는 것은 더욱 위태롭다. 좋은 일을 행해도 명예를 붙이지 말고 잘못을 행해도 형벌로 다그치지 말며 중정(中正)을 따라 무위자연의 상도(常道)를 행한다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생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수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已而爲知者 殆而已矣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 可以保身 可以全生 可以養親 可以盡年 - 養生主 1 '양생(養生)'이란 삶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한다는뜻이다. 장자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은둔을 노래하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의 '몸을 보전하고, 어버이를 봉양하고..

삶의나침반 2008.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