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물 8

장자[190]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수단이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힌다. 덫은 토끼를 잡는 수단이다. 토끼를 잡으면 덫은 잊힌다. 말은 뜻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다. 뜻을 전하면 말은 잊어버린다. 나는 어찌하면 이처럼 말을 잊어버린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나눌 수 있을까?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外物 8 살아가자면 통발이 필요하고, 덫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물고기와 토끼를 잡는 일이지 통발이나 덫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살다 보면 물고기나 토끼는 잊어버리고 통발과 덫에 집착하는어리석음에 빠진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며 헤매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바쁘기만 하다. 성탄절 아침이다. 내 고집과 미혹됨이 크다.

삶의나침반 2011.12.25

장자[189]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 말은 쓸모가 없다." 장자가 말했다. "그대가 무용을 안다니 비로소 유용을 더불어 말할 수 있겠네. 대저 지구는 넓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발자국을 용납할 정도뿐이네. 그렇다고 쓰지 않는 발자국 주변의 땅을 황천까지 굴착해 버리면 사람들이 오히려 유용하다 하겠는가?" 혜자가 말했다. "무용하다고 하겠지." 장자가 말했다. "그런즉 무용한 것도 유용한 것이 분명하다네."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 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厠足而塾之 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 無用之爲用也亦明矣 - 外物 7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말함에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걸어가는데 필요 없다고 발자국이 닫는 부분만 남기고 파낸..

삶의나침반 2011.12.14

장자[188]

작은 지혜를 버리면 큰 지혜가 밝아지고 선을 버리면 저절로 선해진다. 영아가 나면서부터 훌륭한 선생이 없어도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말을 잘 하는 자와 같이 살기 때문이다. 去小知而大知明 去善而自善矣 영兒生無石師 而能言 與能言者處也 - 外物 6 앞부분에는 이런 예화가 나온다. 어느 날 송나라 원군의 꿈에 신령스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어부에게 잡혔다고 하소연했다. 원군이 어부를 불러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원군은 그 거북을 바치게 하고 거북을 죽여 거북점을 치게 했다. 거북은 창자가 도려내지고 몸은 일흔두 군데나 구멍이 뚫렸다. 거북은 능히 원군에게 현몽할 재주가 있었지만 창자가 도려내지는 환난은 피할 수 없었음을 장자는 한탄한다. '작은 지혜를 버리면 큰 지혜가 밝아지고, 선을 버리면 저절로 ..

삶의나침반 2011.12.09

장자[187]

무위로 돌아가면 근심하지 않고 무위를 행하면 거짓됨이 없을 것이다. 성인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일을 일으키므로 매사에 성공한다. 어떤가? 인위의 짐을 싣고 평생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反無非傷也 動無非邪也 聖人躊躇以興事以每成功 奈何哉 其載焉終爾 - 外物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공자를 폄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에는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공자와 대비시킴으로써 자기 학파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후대의 장자학파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를 읽을 때 이런 데를 만나면 껄끄럽다. 장자라면 이런 식의 유치한 형식은 취하지 않았으리라. 여기서는 '주저(躊躇)'에 주목한다. '성인주저(聖人躊躇)'라고 했다. '성인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일을 일으킨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

삶의나침반 2011.12.01

장자[186]

임공자가 커다란 낚싯바늘과 굵은 낚싯줄에 소 오십 마리를 미끼로 매달아 회계산에 앉아 동해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낚시를 했다. 날마다 낚시를 했으나 일 년이 되어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대어가 미끼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솟구쳐 올라 지느러미를 치니 흰 파도가 산더미 같고 온 바다를 진동시키고 그 소리가 귀신 같아 천리가 두려움에 떨었다. 임공자는 이 물고기를 잡아 포를 떴는데 절강의 동쪽에서 창오의 북쪽까지 온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 任公子爲大鉤巨緇 五十개以爲餌 준乎會稽 投竿東海 旦旦而釣 期年不得魚 已而大魚食之 牽巨鉤 함沒以下 驚楊而奮기 白波若山 海水震蕩 聲모鬼神 憚赫千里 任公子得若魚 離而석之 自제河以東 蒼梧以北 莫不厭若魚者 - 外物 4 가 문학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부분이..

삶의나침반 2011.11.24

장자[185]

장자는 집이 가난했다. 어느 날 장자가 감하후에게 양식을 빌리려고 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내 연말에 세금을 걷으면 삼백 금을 빌려주겠소. 이제 됐습니까?" 장자는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내가 어제 여기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소. 내가 뒤돌아보니 수레바퀴 웅덩이에 붕어가 있었소. 나는 물었소. '붕어야,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붕어가 말했소. '나는 동해의 파도를 담당하는 신하라오. 그대는 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나를 살려주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답했소. '좋소. 내가 곧 오나라와 월나라 왕에게 유세하러 가려는데 그때 양쯔강의 물을 서쪽으로 흐르게 하여 그대를 맞이하겠소. 이제 됐습니까?' 그러자 붕어는 얼굴이 벌개지며 나에게 말했소. '나는 나의 상도를 잃고 의지할 ..

삶의나침반 2011.11.09

장자[184]

마음이 천지 사이에 매달린 것처럼 어둡고 막히면 이해가 서로 갈리며 심한 불이 일어나 사람들의 화목을 태워버린다. 달빛은 본래 불빛을 이기지 못한다. 여기에서 무너짐으로써 도(道)는 내쫓긴다. 心若縣於天地之間 慰흔沈屯 利害相摩 生火甚多 衆人焚和 月固不勝火 於是乎有퇴然而道盡 - 外物 2 동양철학에서는 인간 본성이 이렇다 저렇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천지와 상호작용을 하며 우주만물과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이 교류가 끊어질 때 인간은 도(道)를 상실하고 짐승의 단계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항상 천명(天命)에 마음을 열어 막히고 어두워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을 도야함으로써 더 나은 존재로 향상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을 여기서는 '달..

삶의나침반 2011.11.01

장자[183]

겉으로 드러나는 사물은 믿을 것이 못 된다. 外物不可必 - 外物 1 '외물불가필(外物不可必)', 장자 외물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외물(外物)이란 나 이외의 사물이나 현상들이다. 나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모든 물질과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장자가 강조하는 외물은 명예나 부귀 등 인간이 집착하는 욕망의 대상을 말한다. 본문에서 '필(必)'은 '신(信)'으로 해석된다. 이어서 장자는 왜 외물이 믿을 것이 못 되는지 역사상의 인물들 예를 든다. 걸왕은 바른 말을 하던 용봉을 찢어 죽였고, 주왕은 비간의 몸에 일곱 개의 구멍을 내서 강물에 던졌고, 미친 척 하고 살던 기자마저 잡아죽였다. 간신 악래도 예외는 아니었다.부차에게 죽임을 당한 오운과 장홍도 마찬가지였다. 신하의 충성이 반드시 신뢰를..

삶의나침반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