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3

자전거 / 이원수

달 밝은 저녁에 학교 마당에오빠가 자전거를 배웁니다. 비뚤비뚤 서투른 오빠 자전거뒤를 잡고 밀어주면 곧잘 가지요. 중학교 못 가는 우리 오빠는 어제부터 남의 집 점원이 되어 쏜살같이 심부름 다닌다고달밤에 자전거를 배운답니다. - 자전거 / 이원수  자주 나가는 야탑역 광장 한편에 '이동노동자 간이쉼터'가 있다. 컨테이너로 된 작은 건물인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름 그대로 배달 기사나 대리운전기사를 위한 짧은 쉼터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작지만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이 동시는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에 발표되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1960대 중반에도 우리 반에서 중학교에 진학한 ..

시읽는기쁨 2024.12.24

애기와 바람 / 이원수

찬 바람이 제아무리 많이 불어도 애기는 꼭 밖에 나가 노올지. "감기 들라, 가지 마라." 할머니가 붙들면 고개를 잘래잘래 도리질하며 "아냐, 아냐 감기 없쪄." 문 열고 내다보면 바람맞이 밭길에 아, 우리 애기는 뛰어다니네. 떼지어 몰려가는 겨울바람 속으로 저기 우리 애기는 뛰어다니네. - 애기와 바람 / 이원수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손주를 맞아 집으로 돌아올 때 할머니와 손주는 자주 실랑이한다. 놀이터 옆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그네 타고 놀래." "안 돼. 추워서 감기 걸리면 큰일 나." "난 안 춥단 말이야." 손주가 떼를 쓰면 할머니가 질 수밖에 없다. 따스한 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할머니는 또 걱정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공기 걱정, 날씨 걱정이 어디 있었는가. 고삐 풀린 망아..

시읽는기쁨 2019.12.06

겨울 나무 / 이원수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 겨울 나무 / 이원수 겨울에는 산에 거의 가지 않지만, 가볍게 오르는 뒷산 길에서 가끔 이 동요를 읊조린다. 산꼭대기 가까운 비탈에 이 노래와 비슷한 이미지의 겨울 나무가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이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노래 분위기는 생기발랄한 아이들보다 차라리 지금의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이 구절만으로도 쉽게 감정 이입이 되며 나무를 쓰다듬게 된다.

시읽는기쁨 2019.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