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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는 부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남편인 현수에게 몽유병(렘수면 행동장애)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얼굴을 긁어 상처가 나고, 냉장고에서 생고기를 씹어먹고, 심지어는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반려견을 냉장고에 집어넣어 죽이기도 한다. 임신한 아내 수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은 수진마저 강박증에 시달리고 현수가 귀신에 들렸다고 믿은 나머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다. '잠'은 공포 미스터리 장르에 들어갈 영화다. 인간의 망상과 집착이 심해져 파멸로까지 나가는 지를 보여준다. 둘은 합리적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분리해서 생활하는 게 상식이지만 부부는 둘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져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다. 이 영화를 본 ..

읽고본느낌 2024.01.07

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이 영 마뜩잖다. 열에 아홉은 사람들과 다투고 마찰을 겪는 내용이다. 악몽까지는 아니어도 괴롭고 답답한 꿈이다. 잠을 깨고 반추해 보면서 늘 기분이 씁쓸하다. 오늘 새벽 꿈도 그랬다. 옛 직장 동료들과 무슨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누어준 프린트 자료가 있었는데 집에다 두고 나왔다. 내 발표는 두 번째였다. 뒤에 발표하게 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료를 빌려달라 했는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끼던 물건(큰 수정 구슬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음)은 마당에서 뒹굴고, 대드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며 손찌검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이 깼다. 싸우고 지지고볶고 꾸는 꿈마다 패턴이 비슷하다. 인간관계의..

참살이의꿈 2023.02.28

바깥 잠과 수면제

어제저녁에는 9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8시였다. 10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다. 어제는 특별한 날이 아니다. 보통 저녁 10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난다. 나는 하루에 아홉 시간 정도 잠자는 '롱 슬리퍼(long sleeper)'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데 나는 아직 큰 변화가 없다. 아홉 시간 동안 내내 자지만, 어쩌다 오줌이 마려워 한 번쯤 깰 정도다. 이만하면 잠 복은 타고난 것 같다. 넌 심간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하지만 나라고 세상 살아가는 염려나 스트레스가 덜한 건 아니다. 타고난 체질일 뿐이다. 그런데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밖에 나가서 잘 때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달라진 잠자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베개 높이가 달..

길위의단상 2021.11.17

무거운 밤

어설프게 술을 마신 뒤에는 잠을 설친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온갖 꿈이 난무한다. 꿈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가위눌릴 정도는 아니어도 영 기분이 씁쓸하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어제는 직장과 군대 꿈에 시달렸다. 둘 모두에서 나는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온다. 직장은 학교 교무실과 교실이 주무대다. 늘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게 늦거나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댄다. 시간표를 착각해서 아예 수업을 빼먹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서툴다. 수업 준비를 안 해서 무엇을 가르칠지 몰라 진땀을 흘린다. 나는 교무실 동료나 교실의 아이들한테서나 왕따 신세다. 35년 동안 한 선생 노릇이다. 어떤 강박관념이 있길래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따위 꿈에 계속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교직이 적..

참살이의꿈 2021.09.04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 / 김기택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 부드럽고 기름진 잠을 한순간도 흘리지 않는다. 젖처럼 깊이 빨아들인다. 옆에서 텔레비전이 노래 불러대고 아빠가 전화기에 붙어 회사 일을 한참 떠들어대도 아기의 잠은 조금도 움츠러들거나 다치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수액을 퍼올리는 뿌리와 같이, 잠은 고요하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아기는 간간이 이불을 걷어차거나, 깨어 울거나, 칭얼거리며 엄마 품을 파고든다. 그래도 엄마는 젖을 주거나 쉬를 누이지 않는다. 얼핏 깬 듯 보여도 실은 곤히 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몽유병자처럼 허깨비 몸은 움직이지만, 잠은 한치도 흔들리거나 빈틈을 보이는 일이 없다. 남김없이 잠을 비운 아기가 아침 햇빛을 받아 환하게 깨어난다. 밤사이 훌쩍 자란 풀잎 같이 이불을 차고 일어난다. ..

시읽는기쁨 2019.11.16

파티마의 은총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함께 가톨릭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세 군데 모두 성모 발현지다. 1917년 5월 13일, 작은 마을 파티마에 살던 세 아이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그 뒤로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차례나 발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을 비롯해 많은 기념 건물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의 대표 성지다. 지난 6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아내가 제일 가보고 싶어 한 곳이 파티마였다. 가톨릭 신자로서는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성지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묵었고, 파티마에 머문 시간도 다른 팀에 비해 길었다. 그래서 아내는 세 번이나 성지를 찾을 수 있었다. 가던 날 오후에는 가이드의 안내로 성지 전반에 대한 설..

길위의단상 2019.09.16

별침을 권함

자식과 같이 살았을 때는 방의 여유가 없어 부부는 한방을 써야 했다. 남편이 코를 골아도, 아내가 잠꼬대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쉽게 잠이 드니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잠귀가 밝아지고 예민해진다. 마침 그때쯤이면 자식이 출가하게 되고 빈방이 생기니 부부는 서로 편하게 딴 방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많은 가정이 그럴 것이다. 부부는 마땅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초지일관 고집을 부리는 친구가 있지만 별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우리 부부도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3년 정도 되었다. 잠을 잘 못 드는 아내는 전에도 거실이나 빈방에서 혼자 자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자식이 결혼하고 자연스레 방이 비면서 방 하나는 아내의 침실이 되었..

길위의단상 2018.10.27

잠 못 드는 조부모 가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 불면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다. 잠이 들기도 어렵거니와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도 힘들다고 한다. 늙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의학에서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멜라토닌 분비를 늘리는 처방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노인이 되면 잠자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데 실상은 반대다.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인류가 동굴 생활을 할 때 적이나 맹수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했다.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으면 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낮에 활동을 많이 해야 하므로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지는 ..

길위의단상 2017.09.21

별종이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그중에 하나가 잠이다. 보통 사람들은 50대 후반이 되면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특히 새벽잠이 없어진다. 친구들과 얘기를 해 봐도 대개 그렇다. 너무 일찍 잠이 깨서 침대에서 빈둥거리기가 지겹다는 말도 듣는다. 나에게는 그런 얘기가 별세계 같다. 나는 잠이 너무 많다. 직장 다닐 때는 9시간 정도 잤는데 지금은 더 늘어났다. 올빼미족인 윗집 때문에 패턴이 달라지긴 했다. 전에는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요사이는 12시를 넘을 때가 많다. 대신 아침 9시가 넘어야 깬다. 그렇다고 선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오줌 누러 한 번 일어나는 외에는 숙면이다. 병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행복한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환갑이 지났는데도 잠꾸러기인 내가 신기하다. 대신 아내는 잠을 ..

길위의단상 2014.12.12

잠자리의 보수화

일전에 아내와 여행을 하며 온양온천에 있는 호텔의 특A급 객실에서 일박을 했다. 하룻밤 자는데 25만 원이나 하는 방이다. 우리가 그 돈을 내고 묵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예약은 보통 객실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추가 부담 없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평일이라 객실 여유가 있고 마음씨 좋은 종업원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런데 방이 아무리 좋아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고대광실에 살아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면 초가삼간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것만 못하다. 나이가 들수록 집을 떠나 밖에서 잠자는 게 불편해진다. 잠을 깊이 들지 못한다. 젊었을 때는 아무 데나 누우면 잠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잠자리도 보수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제일 걱정거리가 잠자리 ..

길위의단상 2011.03.26

다시 잠들기 어렵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다. 싸늘하고 섬찟하다. 마치 누가 심장에다 얼음조각 하나 집어넣은 것 같다. 몰려온 찬 기운에 생명의 온기가 달아난다.꿈 탓일까? 남에게 한 못된 짓이 바위덩이처럼 커 보인다. 바위는 굴러내리며 또 다른 바위를 건드리고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내 삶은 온통 후회되는 짓 투성이다. 최후의 심판대에 선 것처럼 왜 이리 잘못한 일만 떠오르는가. 생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슴으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나간다. 가을 탓인가? 잠꾸러기인 나에게 이런 한밤중의 각성은 예전에 없던 일이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생각은 자꾸만 자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삶은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허망하다. 속에서 쓴물이 나온다. 환하게 웃는 웃음, 밝은 표정들은 모두가 가식이었다..

참살이의꿈 200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