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10

부러진 사다리

불평등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불평등의 거시적 원인이나 경제적 영향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부제가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이다. 인간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빈곤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유량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내 위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다리는 길어지고 중간에 부러지기까지 한 상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희망인 것 같다. 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키스 페인(Keith Payne)이 썼다. 책은 많은 심리 실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

읽고본느낌 2022.09.06

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이런 서울대가 부끄럽다 / 송현숙 논설위원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사망 열흘 만이었다. 가족..

참살이의꿈 2021.07.25

목수의 망치, 판사의 망치

"수학 7등급 나오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돼. 돈 많이 줘." 유튜브의 인기 수학 강사가 한 말이 지난주에 논란이 되었다. 용접공을 비하했다고 해서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강사는 사과했다. 공부를 못하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강사의 발언에는 직업에 대한 은근한 차별 의식이 깔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심코 나온 말이겠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그런 의식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의 연관 관계도 없다. 전에 근무했던 J 고등학교에서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선생님이 계셨다. 귀국해서 교사 자격증까지 딴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분이 들려주던 여러 독일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는데, 광부 월급이 교수보다 더 높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던 ..

참살이의꿈 2020.01.19

무등 / 황지우

山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 무등(無等) / 황지우 무등산에 오르기 위해 내일 남쪽으로 간다. 대선 끝나고 술을 마시다가 문득 무등산이 생각났다. 찾아가고 싶었다. 그 이름만으로 만나고 싶었다. 무등(無等)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기에 슬픈 이름이..

시읽는기쁨 2013.01.08

대동사회

(禮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옛날 공자께서 신농씨 제사에 참석하시고 나서 성문 위에서 쉬다가 서글프게 탄식하셨다. 자유가 곁에 있다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도(大道)가 행해졌을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었고 어질고 능력 있는 자를 뽑아서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니 사람들은 그 부모만을 홀로 부모라 여기지 않았고, 그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게 했으며, 젊은이는 다 할 일이 있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었으며, 과부 홀아비 병든 자를 불쌍히 여겨서 다 봉양했다. 남자는 직업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자리가 있었으며,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몸소 일하지 않..

참살이의꿈 2012.12.25

승자독식사회

전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후련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20:80의 세계를 넘어 1:99의 세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부와 소득의 독점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가야 할 운명적 길인지도 모른다. 로버트 프랭크과 필립 쿡이 쓴 (The Winner-Take-All Society)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대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는 현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강화되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제로섬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한다. 승자독식은 원래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통용되었으나 이제는 시장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예술, 언어,..

읽고본느낌 2012.10.17

장자[192]

노자가 말했다. "너는 눈을 부릅뜨고 거만하니 너는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위대한 결백은 더러운 듯하고, 성대한 덕은 부족한 듯하다." 양자거는 움칠하며 얼굴빛을 바꾸고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예전에는 숙객들이 그를 자기 가문의 대인처럼 맞이했으며 주인은 자리를 펴고, 처는 수건과 빗을 들고 숙객들은 자리를, 불 쬐던 자들은 화로를 양보했으나 이번에 돌아오자 숙객들이 그와 벗하고 자리를 다투었다. 老子曰 而휴휴우우 而誰與居 大白若辱 盛德若不足 陽子居?然變容曰 敬聞命矣 其往也 舍者迎將其家 公孰席 妻孰巾櫛 舍者避席 煬者避조 其反也 舍者與之 爭席矣 - 愚言 2 이 짧은 일화에서 장자의평등사상을 엿볼 수 있다. 양자거는 노자의 가르침을 받고 당장 삶으로 실천한다. 그는 높은 데를 버리고 낮은..

삶의나침반 2012.01.12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동화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행복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허황된 사람이라고 대중들로부터는 빈축을 사지만 그런 사람들의 꿈으로 인하여 세상은 맑아지고 환해진다. 러스킨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읽은 뒤의 느낌도 이와 같았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포도밭 일꾼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나 한 데나리온의 똑 같은 보수를 준다. 이런 처사는 일견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도밭 주인의 이런 행동을 합당하다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러스킨이 포도밭 비유에서 인용한 것인데, 노동자는 공평한 보수로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능력과 경쟁이 최우선시..

읽고본느낌 2008.03.26

VIP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사용했던 말들이 어느 때부터 생경맞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도 그에 해당된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듣고 자란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있다면 당연히 쓸모 없는 인간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과연 쓸모 없는 인간이 있을까? 그리고 '쓸모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말 속에는 인간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말 중에 VIP도 있다. VIP는 말 그대로 Very Important Person,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 세상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길위의단상 200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