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홀딱 벗고

샌. 2009. 5. 7. 11:14

그저께 천마산에 갔을 때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옆의 동행이그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는 벙어리뻐꾸기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등뻐꾸기였는데,우리가 보통 '홀딱벗고새'라고 부르는 새의 정식 이름이 검은등뻐꾸기라고 한다. '코 코 코 코'하며 네 음절로 노래하는데 그 소리에 '홀 딱 벗 고'를 대응시키니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새소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들린다고 하니까 다른 말로 대치시켜도 안 될 법은 없지만, 처음 '홀딱벗고'를 연상한 사람의 재치가 고마워서라도 그대로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아예 검은등뻐꾸기를 홀딱새로 부른다고 한다. 느낌으로는 홀딱새가 훨씬 더 친근감이 든다. 그런데 우리 같은 속인들이야 '홀딱벗고'라는 새소리에 엉큼한 연상을 하지만 스님들은 다른가 보다. 원성스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 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아득한 옛적부터 들려오는 소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온종일 가슴 한 켠 메아리치는 홀딱벗고새 소리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생에는 반드시 해탈하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모든 상념을 홀딱 벗고...

 

홀딱새는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한 새라고 한다. 그래서스님들은 이 새소리를 더 철저히 수행정진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는가 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이야 아래와 같은 시인의 고백이 더 실감나게 받아들여진다. 이왕에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고, 홀 딱 벗 고 홀 딱 벗 고.... ㅋㅋㅋ....

 

5 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집 뒤 대숲에서 검은등뻐꾸기 웁니다

나무라듯 웁니다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온몸으로 맨몸으로 첫날밤 그러했듯이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벗고, 홀딱벗고

막 여물기 시작하는 초록빛깔로 울어댑니다.

 

- 검은등뻐꾸기의 전언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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