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일신이 사쟈 한이 / 작자 미상

샌. 2008. 11. 7. 11:23

一身이 사쟈 한이 물것 계워 못 견딀쐬.

皮ㅅ겨 가튼 갈랑니 보리알 가튼 슈통니 줄인니 갓 깐니 잔 벼록 굴근 벼록 강벼록 倭벼록 긔는 놈 뛰는 놈에 琵琶 가튼 빈대 삭기 使令 가튼 등에 아비 갌다귀 샴의약이 셴 박희 눌은 박희 바금이 거절이 불이 뾰죡한 목의 달리 기다한 목의 야왼 목의 살진 목의 글임애 뾰록이 晝夜로 뷘 때 업시 물건이 쏘건이 빨건이 뜻건이 甚한 唐빌리예셔 얼여왜라.

그 中에 참아 못 견딜손 六月 伏더위예 쉬파린가 하노라.

- 일신이 사쟈 한이 / 작자 미상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인데, 요사이 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 내 한 몸 살아가자 하니 물것이 많아 못 견디겠네.

피의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같이 크고 살찐 이,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어 다니는 놈, 뛰는 놈에 비파같이 넓적한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하얀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거저리, 부리가 뾰족한 모기, 다리가 기다란 모기, 야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록이, 밤낮으로 비는 때 없이 물고 쏘고 빨고 뜯거니 심한 당비루보다 어려워라.

그중에서도 차마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여기에 등장하는 물것들만 스물다섯이나 된다. 이것들에 고통 받았을 옛 사람들이 안스럽게 보이다가도 시조를 읽다 보면 - 특히 원문으로 - 판소리를 듣는 듯 신명이 나기도 한다. 이런 것이 고통을 풀어내는 선조들의 해학의 맛일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아도 이와 빈대에 시달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특히 이는 그때 왜 그렇게 많았던지, 겨울이면 내복의 솔기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몸은 늘 근질근질했다. 화롯불에 옷을 쬐이면 숨어있던 이가 기어나오는데 그걸 손톱사이에눌러서 죽였다. 그러면 딱 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톱에는 살생의 흔적이 생겨났다. 여자아이들인 경우는 긴 머리카락 사이에 서캐라고 하는 작은 이들이 살았다. 70년대 후반에 군대생활을 할 때는 겨울이면 군용내복의 겨드랑이 사이에이약 주머니를 차야했다. 그 많던 이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이는 없어졌지만 모기는 더 극성이 된 것 같다. 늦가을 찬바람이 부는데도우리 집에서는아직도 모기와 전쟁중이다.자다가 보면왱 하는 모기 소리에잠을 깨게 된다. 그러면 불을 켜고 한 바탕 모기잡이 소동이 벌어진다. 잡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언제깨야할지 몰라 잠을 설치게 된다.모기가 많으면 약을 치든지 향을 피우든지 할 텐데 꼭 한두 마리가 그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그러나 이런 현대인의 모습을 만약 옛날 사람이 본다면무어라고 할까? 살충제가 없던 세상에서 온갖 물것들과 동거하고 살았을 그때 그 사람들이 애처로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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